오늘은 아침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왔다. 상담의 필요성을 절감한 지는 오래지만, 선뜻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상담 예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내려 13분 걸어야했는데 길찾기 앱을 켜고도 정반대로 한참을 걷다가 겨우 뒤돌아섰다. 적어도 30분 이상 길에서 방황을 한 것 같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도착해 상담소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해야 했는데, 늦은 시간을 감안해서 정말 간단하게 답변을 적었다.
드디어 상담실로 안내되어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엔 갈피를 못잡고 변죽만 울리던 대화가 어느덧 방향을 찾아 조금씩 깊어 가는 게 느껴졌다. 정말 별 이야기를 한 것도 같지 않은데 대화가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선명해지는 과정이 신기했다.
이벤트 기간이라 심리검사 몇 가지를 무료로 해볼 수 있었는데 상담사가 말하길 내가 본인의 성향과 기질을 충분히 잘 알고 있어 굳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를 하다보니 나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사건을 털어놓게 되었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명쾌해진 부분도 없지 않았다. (상담사 역시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간 힘든 경험이나 마음을 어떻게 해소했냐는 상담사의 질문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는 관계를 단절하거나 회피한 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해소했다고 답했다.
대답 후 잠시 돌아보니, 책을 읽은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간 책은 뭐하러 읽나, 책을 읽어서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등의 회의를 느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책이 힘이 되어준 것 같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책이라는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밥도 안나오는 데다 돈도 안되는 책 읽기에 집착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독서 모임에 참여해온 것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붙들어 주었고 강하게 만들어 준 거다.
심리 상담을 마음 먹은 여러가지 계기 중의 하나도 독서모임에서 발제문을 읽을 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극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럼 독서모임을 정~말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독서모임 잘하려고 상담받은 나란 사람?!)
오늘 나눈 대화 중에 어린 시절부터 어느 장소에서건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어 진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나의 인생에 대한 짧은 평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독서모임에서 무언가를 읽는 순간에는 사람들이 오로지 나에게 주목하기에, 그 순간만큼은 중요한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되어 과부하가 걸렸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나를 충분히 수용받는 경험, '무'조건 적인 사랑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달으며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나의 아이는?'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충분한 수용과 지지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나 역시 그러한 부모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다음 상담 약속을 잡고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 행선지가 반대방향인 걸 알고 급하게 내려 버스를 바꿔탔다.
도서관에 들러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책을 빌려왔다. 이 책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거라는,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신기한 건, 어느 때보다 내 이야기를 많이 하던 중에도 목소리가 떨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상담사가 나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줄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만큼은 내가 '중요한 사람' 이라는 확신에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돌이켜보건데, 그건 참 좋은 경험이었다.
덧붙여)
책도 읽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상담의 목표이다. 쓰다보니 어째 계속 회피, 단절 후 책만 읽으려고 마음 먹은 사람같다.
나는 나 자신도, 책도, 좋은 사람들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