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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Dec 28. 2023

이백

 처음 시작은 50만 원이었다. 하루 세 시간, 영수증 따위를 붙이고 수업 일지를 쓰거나 사무실이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잡일을 하고 내가 벌어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굳이 놀고 있는 나를 위해 만든 일자리라는 생각에 거절을 반복하다 일단 돈이 간절해 수락해 버렸다.

 50만 원 정도면 용돈으로 부족하지 않은 액수였다. 책을 사보고 카페에 가고 한 달에 한 번꼴로 가는 미용실 비용을 치르기에 충분하다고 느꼈고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에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그랬다.   

  

 이듬해 마을 학교의 수업 하나를 더 맡으며 20만 원의 수입이 더 생겼다. 그 외에 특강 수업에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입은 백만 원을 넘어섰다. 어떤 달은 2백만 원을 넘기도 했다. 사고 싶은 걸 사고도 저축할 여유가 생겼고 남편에게 당당해질 수 있었다. 남편의 월급을 제외하고 이대로 내 수입만 온전히 모은다면 목돈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50만 원으로 시작한 돈벌이는 어느샌가 2백만 원의 목표액으로 자리 잡았다. 2백만 원을 벌지 못한다면 결코 만족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수입을 늘이고 돈을 모으는 데 집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도 줄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습관적으로 쇼핑몰 사이트를 열어보고 한 달에 한 번 옷을 구매하던 습관을 버렸다. 남들에게 커피 한 잔 사는 일에도 인색해졌고 무언가를 얻어먹으면 뭐라도 되돌려주려 지갑을 열던 행위도 더는 없어졌다. 예전이라면 염치없고 얼굴이 두껍다고 여기던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다. 

 내년에는 책을 한 권도 사보지 않고 옷도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스로에게 물질적으로 상을 주는 행위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천만 원을 만드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고 의미있으리라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돈을 버는 일, 아니 한 달에 2백만 원을 버는 일은 내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돈을 벌 수 없는 2월 한 달을 보내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사무보조와 청소 등 잡일에 더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고 추가 수입을 얻게 되었다. 오늘은 맡고 있는 수업 일수를 하루 더 늘여줄 수 없냐고 묻기도 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다.

 올해 맡았던, 시간당 급여가 주어지던 학교 도서관 봉사일이 내년에도 연장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약 그게 안 되면 오전 몇 시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한때 유행하던 뇌 구조 그리기를 해보면 가장 큰 칸에는 ‘한 달에 2백만 원 벌기’를 써넣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비 줄이기. 하루하루 얼마의 돈을 썼나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잠에 드는 나. 오늘 편의점에서 4,500원을 쓰고 그 돈이 아까워하다 숙소에 도착해 굴러다니던 천 원짜리 뭉치와 동전 몇 개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나,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 같다.  

    

 가장 큰 걱정은 일의 특성상 혹여나 수입이 반 토막, 혹은 완전히 사라지면 그 공허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쓸모없는 인생으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근거 있는 두려움이 마음 한 켠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자신과 타인에게 인색하게 굴고 구두쇠처럼 아끼고 일해서 모은 돈으로 무얼 할지 계획은 없다.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서, 차곡차곡 늘어나는 숫자를 보며 나의 쓸모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언젠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예감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시작한 글이었으나 아마도 나는 한동안 돈에 대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벌 수 있을 때,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서 한 달에 2백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 고스란히 모아보자. 투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요, 흥청망청 빚을 지는 것도 아닌, 그저 무해한 집착이라 위안 삼아 보련다.

 내년 3월부터는 꼭 2백만 원을 벌어보자. 그러니까 벌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벌어보자. 만일에, 수입이 똑 끊기면, 그때 걱정은 그때 하기로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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