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유학
지난 주말 내가 몸담고(?)있는 유학 센터에서 ‘센터형 농촌 유학’에 관심이 있는 가정을 초대해 1박 2일 동안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유학 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홍보와 새로운 유학생 유치가 지상 과제일 터, 새 학기를 앞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다. 하지만 센터를 ‘나만의 편안한 공간’이라 자주 착각하는 내게는 조금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행사는 시작되었고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농촌 유학에 관심이 있는 부모와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계기였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 품었던 성가신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샌가 새로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부모를 조심스레 관찰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참여한 아이들 가운데는 조용하지만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는 의젓한 아이도 있었고 조금 수선스러운 아이도, 나이에 비해 씩씩하지만 역시 제 나이에 맞게 순수한 모습으로 바라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캐릭터들에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걸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뭐니 뭐니해도 아이들의 장점은 어른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준다는 것이다. 성인이었다면 괜히 상황이 어색해지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서 등등 이런저런 걱정에 먼저 말을 걸지 못했을 텐데 아이들은 자신에게 향한 관심과 호기심을 기꺼이 받아주며 비교적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새로운 아이들 가운데 나의 아이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는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궁금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게 1박 2일은 누군가와 말을 트기에도 짧은 시간일 거라 짐작했고 아마도 함께 학교에 다니는 기존의 친구들하고만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아이는 같은 조에 배정된 형제(그중에서도 아들과 동갑인 형)에게 금세 푹 빠져버렸다. ‘빠져버렸다’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종일관 그 아이 곁에 맴돌며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고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겨우 쿠키 만드는 체험을 하나 마친 후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 아이와 ‘절친’이 되었다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 마음을 주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한편 우려스러웠다. 아이는 오로지 그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어쩌면 새로운 친구는 아이의 반응과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 주변의 부모에게도 은근히 눈이 갔다. 부모와 두 아이 모두 밥 한 톨 남기지 않은 깨끗하게 비운 가지런하게 포갠 식판을 아이에게 반납하게 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처음 본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부모의 모습도, 늘 한 발짝 먼 곳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조용한 부모도 기억에 남는다.
일요일 오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센터에 돌아와 간단한 설문조사를 마친 후 캠프에 참여했던 아이들과 부모가 떠났다.
처음 본 친구에게 푹 빠져 집착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아이도 두 손을 흔들며 친구들을 보내주었다. 친구들을 태운 차가 떠난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센터 친구들과 공놀이를 이어갔다. 친구가 좋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표현한 것뿐인데 너무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그렇게 부모들과 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 다시 조용한 센터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1박 2일의 캠프가 끝난 오후, 빌려온 책을 실컷 읽다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깬 월요일이었다. 중요한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지난 주말 새로운 사람들과 섞여 보낸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먼 길을 찾아와준 아이들과 부모를 관찰하고 함께한 경험은 ‘성가신 일’이기보다는 즐거움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와 아이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농촌 유학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늘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고 익숙했던 일상을 흔들어 놓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며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생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건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간 그들에게도 주말 캠프가 ‘그 나름의 의미’가 는 시간이 되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