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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18. 2024

고립의 기억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를 읽고

 ‘고립의 시간을 살아가는 여성 청년들’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은둔형 외톨이 흔히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존재에 관해 관심이 없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지상파 방송에서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때면 항상 챙겨보곤 했다. 20대의 남성이 방문을 닫고 가족을 포함한 세상과 단절한 채 밤낮이 바뀌어 PC게임을 하며 몇 년을 보내는 동안 가족과의 갈등이 깊어진 사례들을 주로 보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여성 청년들의 고립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간 매체에서 다루어진 내용보다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고립과 경제 활동을 번갈아 이어가는 청년, 프리랜서로 일하며 일자리에서도 집에서도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이나 정기적으로 일을 쉬는 기간 고립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청년의 고립은 취업이나 안정된 일자리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많은 수의 청년들은 생계와 사회적인 압박을 이기지 못해 불안정한 고용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나 단기간 계약직, 정부의 일자리 사업 참여와 같은 미래를 기약하기에도, 이직을 위한 경력이 되기도 어려운 일자리에 몸을 담는다. 

 계약기간이 만료되거나 일자리 사업 종료,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의 이유로 청년들은 때로는 스스로 원해서 혹은 비자발적으로 실업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전문 지식을 쌓아갈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이나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한 구직 활동은 가족의 지원이나 본인의 경제력으로 가능한데 이러한 개인적 자원이 없는 청년에겐 꿈꾸기 힘든 일이다. 

 고립 청년 중 몇몇은 가족의 갈등과 그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무력감’을 공통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오랜 기간 존중받지 못하고 억압받은 기억은 몸에 각인 되어 때로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무기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어린 시절부터 몸에 각인된 무기력이라니. 책을 읽으며 청년 시절 경험한 고립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 바로 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만 지내며 몇 년을 보냈다. 퇴사 다음 날부터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해 지원 버튼을 눌렀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처음 가졌던 자신감은 몇 차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매력적인 지원자가 아니었다. 전문 지식은 물론, 뭐든지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패기도 없으며 하다못해 성격이 끝내주게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좋은 성격’을 강조한 구인 글은 가장 먼저 걸렀다.) 

 몇 년의 시간을 집에서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몇 군데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오래가지 못했다. 배가 덜 고팠던 건지, 인내심이 겨우 그 정도였는지 때로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가끔은 몇 달 만에 퇴사를 반복하곤 했다.

 

 결국 고립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이자 지원군이 생겼지만 20대의 ‘고립의 시간’은 잊기 힘든 기억이다. 가족 눈치를 보며 식사를 대충 때우고 방문을 닫은 채 소리 죽여 지내던 나날, 밤낮이 뒤바뀐 채 뜬 눈으로 새벽을 맞던 일들이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떠올랐다. 

 몇 장면은 생생해도 도대체 난 몇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방구석에서 무얼 하며 하루를 보냈던 걸까 의아하기도 하다. 그때는 책도 안 읽었으니 말이다. 매일 영화를 한 편씩 본 것도, 남들 다 보던 미드를 몰아본 것도 아니다. PC게임은커녕 당시 유행하던 동창회 커뮤니티나 채팅도 아예 단절한 채 지냈으니 말이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만 갔다. 돌이켜보니 왠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도대체 그런 식으로 몇 년을 보내는 게 가능하다니.

 한편으론 그런 텅 비어버린 시간을 몇 년이나 보낸 후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다니, 동료를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했다니(결국엔 결혼까지 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꿈을 꾸다니. 나도 참 만만치 않은 사람이구나 싶다. 장하다. 내 자신.

 

 그때와 다른 40대가 되었지만 오랜 기간 고립으로 다져진(?) 습관이 나오려 할 때가 있다. 씻는 일조차 버거움으로 다가올 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인 침대에서 몇 날 며칠을 누워만 있고 싶을 때, 밖으로 나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인 채 방안에만 숨고 싶을 때, 누워있으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대로 쉬지 못한 적이 고백하건대, 꽤 많다.

 책의 말미에 소개된 ‘여성 고립 청년들이 고립을 견뎌낸 방법’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정책 이용하기’, ‘관계 유지하기와 관계 만들기’, ‘일상 만들기’, ‘사회성 훈련’ 같은 것들.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매우 유용한 팁이다.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고립의 시간을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물론 있겠지...)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일과 관계로부터 고립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겠지만 충분히 많이 해왔고 버티고 있는 거라고, 세상이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온, 그때의 기억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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