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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23. 2024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애를 키우는 건 고된 일이다.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자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내게는. 

 어제도 변함없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버거웠다. 이렇게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는 것에도 불편한 마음이 뒤따르는데 그건 일종의 죄책감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부모 노릇에 엉망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해진 탓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간 철들고 깨달아가는 것이 있다. 함께 성장하고 아이를 낳기 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도 같다. 때로는 내가 아이에게 의지하며, 아이가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그것도 비중이 꽤 큰 이유). 행복한 순간이, 짜릿하고 눈물겨울 정도로 행복에 겨운 순간이 아이를 키우면서 아주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역시 고달픈 일임에 틀림없다.

 

 어제는 숙제 때문이었다. 그놈의 숙제. 한글책을 읽고 나면 영어책을 엄마 앞에서 소리 내어 몇 페이지 읽는 게 숙제 루틴이다. 며칠째 영어책을 읽을 때마다 짜증을 팍팍 낸다. 엄마도 인간인지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상한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짜증을 낸 아이도, 옆에서 함께 감정이 상해버린 엄마도 서로 입을 다물어버려 한동안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결국 엄마인 내가 한마디 한다. “고생했어. 이제 (책 좀 읽게) 좀 비켜줄래?” 

 1차전을 치르고 밤 열 시가 넘어 수학 문제집으로 또 기분이 상한다. 매일 푸는 양도, 아이의 실력도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방으로 돌아서는데 순간 섬뜩한 생각이 스친다.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얼마나 반복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유별난 엄마라서, 인내심이 부족하고 아이의 성장과 장점보다 부족한 점부터 먼저 보는 욕심 많은 엄마여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명 ‘제 자식도 모르는’ 엄마일 수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더 댈 수도 있다. 제가 이루지 못한 열등감과 욕망을 아이에게 쏟아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이를 끌고 공부를 시킬 만큼의 열정과 투지가 부족한 엄마, 아이를 충분히 관찰하지 않아 특기와 적성을 찾아주지 못한 무능한 엄마,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교감으로 안정된 애착 관계를 이루는 것에 실패한 엄마는 아니려나.

 어쩌면 그저 좋은 공부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 엄마일 수도 있고.(아이의 지능은 엄마의 것을 닮는다면서요?)

 이 모든 이유로 아이를 속 편히 미워만 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아이를 미워하는 엄마라니!)

 

 그렇게 찜찜한 채 잠이 들어 아침을 맞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엄마에게 핀잔을 들은 아이는 오늘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폭설로 돌봄교실을 운영하지 않아 아이들은 유학 센터에서 종일을 보내게 되었다. 점심시간, 열심히 고기를 구워 아이에게 챙겨주니 왜 다른 아이들은 내버려 두고 자기만 챙겨주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나름 공평하게 접시에 놓아주었던 것 같은데.

  고기를 한참 먹던 아이가 아랫니가 흔들린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젓가락을 씹어 치아에 부딪혔다는 아이의 입에 손가락을 넣고 확인해보니 잇몸에서는 피가 나고 치아도 제법 많이 흔들리고 있다. 아마도 유치가 흔들리나보다고 말하는데 아이는 ‘영구치’인 것 같다고 주장한다. 

 가장 마지막 이갈이를 한 적이 언제인지, 어떤 치아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순간 당황한다. 돼지고기를 구워 먹다 영구치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을 일은 없겠지 싶어 유치가 맞을 거라 아이를 안심시켜보려 하지만 여전히 찌푸린 얼굴에 미심쩍은 기색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하고 만다. 감정을 담아서. “불편하면 그만 먹어. 그리고 눈 그치면 치과 가 보자.” 아이는 구운 고기에 남은 고기와 김치를 넣은 볶은 밥까지 다 먹고 방으로 향했다. 

 

 큰소리친 것과는 달리 점심을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정말 영구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포털 사이트에 ‘영구치 유치 구별법’,‘영구치 알아보는 법’ 등을 검색해 게시물 몇 개를 읽는다. ‘사탕이나 딱딱한 걸 씹는다고 흔들릴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치과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을 읽고 조금 안심이 된다. 설마, 그래도 영구친데. 한편으론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마지막으로 뽑은 유치의 자리를 과연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든다. 혹시 나만 모르는 건가.

 

 어느덧 저녁 시간이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흔들리는 유치(로 추정되는 치아)가 신경쓰인다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숙제 시간에도 나의 혈압을 쥐락펴락할 것만 같다. 아 제발, 오늘은 무사히 마무리하고 싶다. 

 주문을 걸어보기로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드러난 결과물보다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재잘재잘하고 싶은 말을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는 거야. 냉정함과 평가하는 눈빛 같은 건 죽이고 애정과 선의만 남긴 채 좋은 엄마가 되어보는 거야.” 

 사실 이건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육아를 하며 찾아오는 온갖 감정 동요를 다독여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었으면 좋겠다. 친절한 상담사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무런 편견이나 평가 없이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정말인지,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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