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지금 세 살인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풍요롭고, 일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거야. 그렇게 딸에게 말을 걸듯 만들었습니다. "
<걷는 듯 천천히/문학동네>29쪽,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책을 읽다 옮겨 적은 문장이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일상이라니, 그게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일까 궁금한 마음에 오늘 밤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말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확인한 장면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가정의 모습이었다. 나는 세련된 가전과 가구가 갖춰지고 완벽하게 정리된 주방보다는 방금 설거지를 마친 듯한 조리기구가 널려있고 조금은 어수선한, 식탁 위에 이것저것 생활의 흔적이 남겨진 그런 주방을 애정한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도 그런 장면이 나오면 일단 멈추곤 하는데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나의 취향을 저격한 공간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졌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다. 플라스틱 미니 빨래 건조대에 널린 수영복과 소스를 담은 통이 편하게 올려져 있는 식탁, 나름의 정리를 마쳤지만 여전히 조금은 어수선함이 남아있는 책상 같은 것.
워낙 유명한 영화라 줄거리는 생략하고 나의 마음이 움직였던, 눈물이 핑돌았던 몇몇 장면을 적어보려 한다.
먼저 이혼한 딸과 손자를 책임지려고 다시 무언가 도전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엔 이미 너무 늙어버렸다는, 이제 그만 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할아버지는 무던하게 ‘가루칸 떡’을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가장이라는 무게라는 건 평생을 짊어지고 있는 건가 보다. 문득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후 베트남 참전으로 얻은 유공자 자격과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온 증명으로 연금과 의료 혜택을 받아 생활하시는데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건 자식들에게 조금의 부담도 주지 않음에 대한 안도는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혼한 후 전남편과 함께 후쿠오카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 술기운에 전화를 걸던 엄마가 나온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냐고 투정하듯 묻자 아들은 ‘내가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라 말한다. 아마도 부모가 싸우는 과정에서 혹은 엄마의 푸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키워왔을 테다. 그 말에 엄마는 말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 아래 얼마나 많은 오해와 상처를 주고받는 걸까. 나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에, 제 나름의 상처를 받으며 커가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고도 마음 아파서 영화를 보며 나도 눈물이 났다.
후쿠오카와 가고시마에서 온 아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한 자리에서 각자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에서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나거나 배우로 성공하는 소원은 아마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가망이 희박한 기적일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의 크기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저마다 이루어지길 희망하는 소망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살아가는 건 어쩌면 소망을 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