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씨 Jan 30. 2024

책 무용(無用)론

 방학 계획 중 하나는 짐 정리다. 자고로 정리의 시작은 비우기. 책은 알라딘 중고 판매로 처리하고 옷은 미련 없이 헌 옷 수거함에 넣기로 했다.

 어젯밤, 드디어 책 정리를 시작했다. 앱에서 바코드를 찍어 판매 신청을 한 후, 상자에 책을 포장해 집 앞에 두면 배송과 입금까지 알아서 처리되어 중고 판매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종이 상자를 펼쳐놓고 스마트 폰을 손에 쥔 채 책장 비우기에 나섰다. 첫 번째 난관은 ‘판매 불가’로 확인되는 책들이었다. 따로 빼두는 것도, 조금씩 날라 재활용장에 갔다 두는 것 모두 예상치 못한 수고스러움이었다.

 책장 두 칸을 비웠을 뿐인데 택배로 부쳐야 할 양이 상당했다. 책 정리의 두 번째 난관은 접힌 책 귀퉁이를 다시 펴고, 빽빽하게 붙은 인덱스 테이프를 일일이 떼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소름 끼치게 좋은 구절을 만나더라도 절대 귀퉁이를 접어 따로 표시해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쨌든 책 스무 권(중고 판매 1회당 최대 권수)을 담은 택배 상자를 현관 앞에 던져 놓았다. 정작 판매 금액은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은 책들과 왜 산 걸까 싶은 책까지. 책을 구매하던 일에 꽂혀(?)있던 한때가 떠올랐다. 사고 싶은 책으로 장바구니가 넘치고 책 욕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하루가 멀게 택배가 도착하고, 도서 구입비로 가계부의 적자를 이루던 나날들이.

 왜 그렇게 책을 샀을까, 책장을 정리하며 생각 정리도 함께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는 무언가 마음을 쏟을 데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책이었던 것 같다. 다양한 책을 읽고 책장을 채우며 일상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성취감이나 삶의 의미를 느꼈던 것도 같다.

 책은 나에게 세상에 벽을 치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고,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들 때면 자연스럽게 책으로 도망쳤다. 책은 훌륭한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나타나 외부세계를 차단해주었고, 이런 식으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이런 책도 읽었다.’ 식의 자의식 과잉과 책을 소유하는 행위를 지식을 소유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착각, 나중에(아마도 죽음 후에) 읽은 책으로 기억되고 싶은 허무맹랑한 꿈과 집에 책이 많으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계산된 의도 등이 책을 산 이유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의 끝은 결국 책을 사고 읽은 일이 다 부질없다는, 나에겐 꽤 익숙한 ‘만물 무용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읽은 책 내용의 대부분은 기억에서 지워졌고, 겉으로 보기엔 읽기 전과 큰 변화가 없으며 아이는 여전히 독서에 별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오늘 오전에도 책을 읽느라 두어 시간을 썼다. <여자전>이란 책의 챕터 하나를 마무리하곤 엎드려 울다가 인생을 ‘잘’사는 것에 대해 약간 고민을 했지만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로 남았고, 디지털 게임과 연결한 페미니즘 서사를 다룬 <원본 없는 판타지>의 마지막 챕터는 도중에 읽기를 포기했다. 흥미롭게 읽기 시작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는 어제와 달리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읽는 일에 집착하고, 오후에도, 밤에도 읽을 틈만 노리고 있는 자신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글쓰기는 어떤가. 도대체 왜 쓰는가. 차라리 함께 있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욱 시급하고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만물 무용론’은 일단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없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까지 책을 사 모으고 읽느라 쓴 시간과 돈. 뭐라도 써보겠다고 어수선한 식탁에 앉아 보내는 이 순간이 결코 쓸모없지 않다.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이 최악인 것 같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더 끔찍하게 최악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덜 최악일 것이라는 희망은 책 속에 있다.

 글 쓰는 일은 더욱 그렇다. 아까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잘’사는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설거지를 하거나 전화를 받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생각이 확장되진 못했지만 언젠가 자리를 잡고 앉아 그때를 떠올리며 쓰다 보면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쓰면서 인생을 고민하다 보면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능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도 언젠가 책 읽는 재미를 찾게 될 수도. 최소한 아이는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와는 다른 인간형이며, 나의 욕망을 실현시켜 줄 도구가 아니라는 깨달음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정리해야 할 책이 넘친다. 책장을 ‘건드리기만’ 한 상태라 정리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한,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글을 마무리하는 데로 책 정리를 계속하기로 한다. 책을 읽고, 사고, 중고로 판매하는 일 모두 어딘 쓸모가 있다. 판매하는 일은 특별히, 그렇다. 내가 한 시절 귀하게 여겼던 책을 누군가 읽다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누군가 나의 책들에서 내가찾지 못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길. 접힌 귀퉁이가 그의 독서에 조금의 방해도 되지 않기를 바라 본다.

작가의 이전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