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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r 15. 2024

오늘의 손님

 오늘도 빵집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방에서 구워진 빵을 빼고 시스템에 입력하랴, 온도를 체크하고 포장하다 손을 떨며 케이크 위에 다듬은 과일을 올리랴 마음은 바쁜데 손에는 도통 속도가 붙지 않는다. 매장을 돌며 빵을 고르는 손님을 곁눈질을 하다 계산대로 다가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계산과 포장도 한다.

 아직도 손님이 앞에 서면 긴장이 된다. 행여나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할까, 평범하지 않은(?) 결제 수단을 이용하거나 계산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오늘도 다섯 시간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손님을 만났다. 금요일 퇴근한 자의 자유를 만끽하는데 그중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첫 번째 손님은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어가 준 여자분이다. 커다란 호두 파이를 두 개를 계산대로 들고 온 손님은 그중 하나는 차에서 바로 먹을 거라며 포장을 거부했다. 자신이 호두 파이를 ‘정말’ 좋아한다며 부연 설명하는 손님은 행복해 보였다. 통신사 할인과 포인트 적립을 마치고 빵을 건네는데 빵 더미에 있던 식빵 하나를 보며 ‘이건 그냥 주는 거’냐 손님이 물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해 다른 손님 것을 함께 계산한 것이었다.

 곧바로 사과하고 방금 결제된 내역을 찾아 취소 처리를 하는 데 뭔가 잘되지 않아 버벅댔다. 베테랑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해결한 후 재차 사과하니 손님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 거듭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매장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그분이 차에 앉아 호두 파이를 먹으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길 진심으로 빌었다. 

 

 두 번째 손님은 개성이 충만한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햄치즈 오리지널 잉글리시 머핀’을 들고 계산을 마친 손님의 한쪽 손에는 살벌하지만 귀여운 삼지창이 그려진 에너지 음료가 들려 있었다. 손님의 외모나 말투와 제법 어울리는 궁합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려는지 머핀을 데워달라 요청했다.

 포장을 벗기고 접시에 담아 30초간 데운 후 접시를 쟁반에 올려놓고 손님을 불렀다. 접시에 담긴 머핀을 보고 그 손님은 “오, 귀엽다!”라며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노란색 접시 가운데 동그랗게 자리 잡은 잉글리시 머핀의 비주얼에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귀여움이 담겨있었다. 이런 사소한 사물(?)에 귀여움을 발견하는 손님의 능력에 감탄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매장에 들어서서 빵을 둘러보며 실컷 통화만 하다 나간 손님(엄청 바빠 보였다), 유아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소리높여 외치던 아기 손님, 케이크를 사며 큰 초 9개와 작은 초 3개를 담아달라던 중년의 손님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과점에서 일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인 것 같다. 맛있는 빵이며 누군가를 축하할 케이크를 사며 한껏 날을 세우고 사는 사람은 드무니 말이다.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게 빵을 먹을 수 있도록 서비스 향상에 힘쓰리라 다짐하며 글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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