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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r 17. 2024

요령없는 손

 주말 아침, 샤워를 하고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아 손바닥에 로션을 짜려는데 일어난 살갗이 몇 군데 보였다. 양손을 들고 손바닥과 손등을 뒤집어 가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기저기 긁히거나 베인 작은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기억에 남는 상처는 한두 군 데 뿐이고 나머지는 어쩌다 긁히고 딱지가 앉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에 베인 부분을 빼고는 워낙 작은 상처들이라 통증이 거의 없어 상처 연고나 반창고를 바르거나 붙이지도 않고 지내왔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일을 하면서 손에 상처를 입는 일이 잦았다. 사무직으로 근무할 때는 물론 그럴 일이 없었고 서비스 업무를 하며 이런 저런 물건을 들고 나르는 일에 종사하는 동안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손에 크고 작게 긁히거나 까진 상처들이 남아있었다. 

 20대에 종사한 직장에서는 좁은 공간에 음료나 서비스에 필요한 음식, 집기류를 사각형의 철제 컨테이너 박스에 넣어 보관한 장소에서 일을 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하나 열어 물건이 제대로 실렸는지 체크한 후, 손님이 오면 다시 모든 박스를 열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물론, 업무가 끝난 후엔 박스를 제자리에 다시 넣어 원래 상태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때 서랍을 열고 닫고, 컨테이너에서 서랍을 분리하고 다시 넣으면서 손가락 마디마디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손가락 마디 끝에 가로로 새겨진 상처가 꽤 많이 남아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네일 아트를 한 긴 손톱이나 젤 네일을 붙이고서도 무리 없이 그 일을 해내는 걸 너무나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옷에 무언가를 흘려 얼룩이 남는 일도 남들에 비해 잦은 편이다. 상대가 지저분해진 옷이나 앞치마를 지적하면, ‘열심히 일한 티를 내려고’ 그랬나 보다며 멋쩍게 웃어보이곤 한다. 

 뭐가 됐든 일을 하면 열심히 하려고 한다. 요령이나 꾀를 부리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간의 경험을 돌아보니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요령 없이 일하다 얻은 작은 상처들을 바라보며,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요령’을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수월하고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돌이켜 생각하니 잘하려는 마음이나 남들의 시선이나 의견에 신경을 쓰는 마음만 덜어내도 상처는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의 속도와 방식으로 천천히 조금은 답답스럽게 말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나의 일하는 스타일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일부터는 무엇보다 어디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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