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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r 31. 2024

Greatest Love of All

 “어쩌죠. 제가 다시 가서 하고 싶네요. 앞으로 진짜 주의할게요. 바쁘실 텐데 너무 민폐 끼쳤네요. 다음부터 확실하지 않으면 여쭈어볼게요. 죄송합니다. 기사님께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소리 내어 보낸 문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 지나치게 ‘납작’ 엎드린 건 아닐까, 회의감이 들지만 이미 전송해버렸고 상황은 마무리된 지 오래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퇴근 후 일정이 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쌓인 설거지를 하고 건조대에서 빨래를 정리했다. 찌개 한 가지를 마무리하고 씻은 후 짐가방을 챙기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 앉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발신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근무 중 내가 엉망으로 한 일을 다른 직원이 수습하고 있다는 잘못을 질책하는 내용의 문자였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답변을 보냈으나 착잡하다 못해 이런 기분으로는 주말을 망칠 것만 같았다. 겨우 금요일 오후 두 시인데 말이다. 


 무슨 결심에서였을까 지인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기 전 매장을 들러보기로 했다. 얼굴을 보고 직접 사과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주차 후 몇 시간 전 퇴근한 매장에 다시 들어섰다. 상황이 이미 종료된 매장은 평화로웠다. 내가 실수한 일을 수습한 직원에게 직접 사과하고 제대로 정리된 빙과 냉동고를 확인했다. 내가 매장을 찾을 줄은 몰랐던 직원도 적잖이 당황한 듯했고 실수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규정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친구와 함께 먹을 타르트를 하나 사 들고 매장을 떠났다. 직접 대면해서 상황이 종료되어서, 찝찝한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르지 않을 수 있어 그 순간만큼은, 홀가분했다.     


 오래지 않아 퇴근한 이에게 실수를 질책하는 문자를 보낸 직원과 그렇게밖에 대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 성실히 일을 해왔고, 아직은 서툴며 그 과정에서 실수한 것뿐인데 그게 그토록 ‘민폐’를 끼치는 일이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 비굴하게 굴었던 걸까.

 일터에서 문제가 생기면 모든 걸 자신의 미흡함과 일머리 부족 등으로 여겨 왔다. 상황이나 환경, 그날의 몸 상태 혹은 컨디션, 하다 못 해 남 탓을 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렇게 고스란히 ‘내 탓’으로 뒤집어쓰며 상황을 수습했다. 그 후에는 당연하게도 자괴감이 따라왔고 그런 일이 거듭되면 더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기 어려웠다.     

 주말 내내 친구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한 친구 앞에서는 시원하게 욕을 퍼부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고질적인 일터에서의 비굴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착한 거랑 소심한 거랑은 다른 거야.”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말했다. 착한 모습을 버리진 않아도 소심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실수를 지적받으면 수긍하는 걸로 충분하니 더는 ‘죄송’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누워 지난주부터 매일매일 적어도 세 번은 반복해 듣고 있는 노래를 다시 틀었다. 가사를 띄워놓고 목청을 높여 따라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코끝이 찡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돌보아야 하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라고, 이제 더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자고 마음먹으며 같은 노래를 몇 번 더 반복해 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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