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라디오에 출연한 게스트는 말했다. 적절한 양의 도파민을 유지하며 사는 일이 자신의 목표라고. 그가 경계하는 일은 적정 수준 이상의 도파민 맛을 보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이라는 말에 수긍이 갔다.
그럼 나에게 '소소한' 도파민을 주는 일은 무엇이 있나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날씨나 호르몬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 일이 잦지만, 일상에서 잠깐이지만 '충분히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1. 좋은 사람과의 만남
예전과 달라진 점 하나. 지인들에게 '번개 제안'을 하는 일이 종종있다.
"금요일 밤인데 뭐하시나요~? 심심하시면 심야 영화보러 가실래요?", "내일 저녁 퇴근 후 맥주 한 잔 어때?", "날이 좋습니다. 시간되시면 달달한 커피 한 잔 하실 분~?"
갑작스런 만남 제안에 누군가는 아쉬움을 표하고, 누군가는 흔쾌히 응답해준다. 아무에게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혼자 영화를 보러가거나 훌쩍 도서관으로 향한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듯하다.
동네에 맛있는 치킨집이 있다는 데, 동네 친구에게 조만간 톡을 보내봐야겠다. "남편 야근 언제야? 애들데리고 치킨 먹으러 가지 않을래?"
2. 라디오는 내 친구
아들과 라디오 듣는 취미가 생겼다. 두 시부터 여덟 시까지, 일상 생활의 BGM은 언제나 MBC 라디오이다.
일단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는 제제의 진행 스타일을 매우 좋아한다. 어제는 제제가 작정한 듯 조헤련의 '아나까나'와 유니의 '가' 리믹스 버전을 연속으로 틀어주었다. 퇴근 후 소파에 늘어져있다 노래를 듣고 "응차!"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밥을 준비했다.
'네시엔 윤도현입니다'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라디오를 통해 진행자로 윤도현을 알게 된 아들이 윤밴의 노래를 몇 곡 듣더니 콘서트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그렇게 아들의 첫 콘서트를 예매했다. 아들만큼 나도 기대가 크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다. 여섯 시 반쯤 '철수는 오늘'이라는 코너를 들을 땐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볼륨을 키우고 아들에게 말 걸지 말 것, 어떤 소음도 내지 않을 것을 부탁하곤 한다. 월요일마다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매주 한 편 영화를 소개하는데, 그의 추천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려고 한다. 단 한번도, 그의 선택이 실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며칠 전 배캠이 34주년을 맞았다. 부디 오래오래 철수 DJ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 영화보는 재미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너무나도 많다. 매주 한 편의 영화를 아끼는 마음으로 본다.
주말을 앞둔 목요일 즈음이면, 어떤 영화를 볼까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책방 사장님으로부터 '영화 공간 주안'이란 상영관을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방문해보니, 맙소사!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었다.
이번 주엔 그중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을 볼까 한다. 사실 그의 데뷔작 <해피아워>라는 영화를 무척 보고 싶은데, 상영 시간이 다섯 시간이라 망설이게 된다. 언젠가 날을 잡아 간식과 음료와 주전부리 등등을 준비해놓고 꼭 보리라~!
4. (부담없이) 책 읽는 재미
어려운 책과 완독/다독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으니 요즘 책 읽는 재미를 다시 찾았다. 한 편, 보고 싶은 책이 늘어나다보니 도서관에 상호대차나 예약 서비스를 과용하는 나쁜 습관이 또다시 시작되려한다. 경계할지어다.
5. 글 쓰는 재미
글은 그냥 쓰는 거다. 비장함도 덜어내고 욕망도 덜어내고. 그렇게 '즐겁게' 글을 써나가고 싶다.
약간의 부담감을 가진 채, 숙제를 하듯이, 안 쓰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렇게 쓰고 나면 약간의 성취감(=도파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오늘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