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씨 Apr 13. 2024

백만 번째 계획

 어제 오픈 근무조로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퇴사했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직원과 근무를 하게 된다. 나에게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는데, 근무시간이 한 시간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정오에서 오후 한 시로 퇴근이 늦어져도 일상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어차피 출근하는 것, 한 시간 더 일하면 월급도 늘어나니 처음엔 내심 반가운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2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 인상과 함께 찾아올 일상의 변화를 떠올려보았다. 정오부터 한 시까지는 손님이 몰려오는 시간인데다 오전과 달리 혼자 근무 하는 부담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침 설거지와 집안 정리를 하고 나면 한숨 돌릴 틈 없이 아이의 하교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오후에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릴 때면 집중이 되지 않아 짜증을 내는 일이 잦다. 거기에 수영장과 헬스장을 번갈아 다니고, 저녁 준비와 다음 날 아침 준비까지 하다 보면 한숨을 푹푹 쉬며 잠자리에 드는 게 다반사다. 

 이런 고민 때문인지 조정된 근무시간에 대한 확답을 묻는 사장님에게 선뜻 그러마,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잠깐 주저하다 앞으로 근무할 친구가 괜찮다면 지금처럼 12시에 퇴근하고 싶다고 어렵게 입을 뗐다. 다행히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 사장님은 그 직원과 이야기해보겠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야기를 잘 마치고 퇴근한 금요일, 평소와 달리 집에 오자마자 게으름을 피웠다. 허겁지겁 음식을 몰아 먹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채널만 돌리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하교하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해야 할 일들, 그러니까 글을 쓰거나 구상해놓은 만화를 그리는 일,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서는 일 등을 생각하면서도 드러누워 읽히지도 않는 책만 붙들고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한 푼이라도 더 버는 쪽을 택하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 후회가 몰려왔다. 


  그렇게 저녁까지 소파에서 뭉개다가 입장 마감 시간을 조금 앞두고 수영장을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과 수영장 내부 모두 평소보다 덜 붐비고 여유가 있었다. 

 평소처럼 레인 안에 몸을 담그니, 어제와는 다르게 “춥다”라는 말 대신 “시원하다”라는 혼잣말이 나왔다. 시원한 물속에서 영법을 번갈아 가며, 짧은 시간 열심히 헤엄을 치고 수영장을 나섰다. 

 밤 아홉 시가 넘은 주변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컴컴한 공원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수영장 건너편에는 불을 밝힌 식당과 술집들,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달라진 풍경 속을 조금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탓인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차올랐고 결국엔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12시에 퇴근한 후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며 두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퇴근 후에 영어 공부, 자격증 준비, 곧바로 헬스장 가기, 집안일 미리 해놓기 등등 고작 한 달 남짓 일하는 동안 많은 결심을 해왔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신에게 실망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렇게 느낌상 백만 번째 결심을 다시 해본다. 월요일부턴 퇴근 후 집밖에서 두 시간 작업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일 밤엔 출근길에 깜빡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노트북과 연습장, A4 용지와 필기구까지 가방을 싸두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에 (사소한) 새로움 더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