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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pr 15. 2024

마음의 구멍이 커질 때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에는 구멍이 하나 있다. 공허함이나 외로움으로 명명될 그 구멍은 날씨나 기분 혹은 호르몬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크기가 변하곤 한다. 

 주말을 마무리하는 어제 오후 알 수 없는 이유로 구멍의 크기가 커져 있었다. 4월의 날씨치고는 이례적인 고온을 기록한 날이었고, 도서관에서 종일을 보내다 늦은 오후에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작스레 기분이 울적해지고 기운이 빠졌다. 평소와 달리 도서관 가방을 정리하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그렇게 한동안 소파에 누운 채 시간을 보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몸을 일으켰다. 두부, 밀가루, 느타리버섯, 애호박, 꽈리꼬추 등등의 식재료를 적은 리스트와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마트로 향하는 동안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무리와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장난감으로 비눗방울을 쏘며 해맑게 웃는 아이와 그 옆에선 엄마의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00이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은 요즘 부쩍 엄마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함께 있다가 헬스장이나 마트에 나가려 하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 없다. 가끔은 나갈 일도 없는데 엄마의 외출을 종용해서 당황스러운 적도 있다.

 잠시도 떨어져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아들을 보며 ‘엄마 껌딱지’라고 볼멘소리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아이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구나 싶다. 홀가분한 기분이 들 만도 한데 어째서인지 그 사실이 서글펐다.


 공터에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무리를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울적해졌다. 농촌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는 아직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하고, 주말에도 좀처럼 놀러 나가는 일이 없다. ‘심심하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를 보고 고민하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학원 일정을 하나 더 늘린 것이다. 

 시간이 허락해 줄 거라 믿고 있지만, 나 역시 어렸을 적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았던 적이 있다. 타고난 성격이 소심하고 숫기가 없어 먼저 다가서지 못했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줘야만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까지 빼닮다니. 극 I 성향을 물려준 것이 속상해 한숨이 나왔다. 


 울적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벌써 저녁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장 본 물건을 정리하고 평소처럼 라디오를 켜고 주방에 들어섰다. 

 공허한 건 공허한 거고, 이제 가족들에게 저녁밥을 먹여야 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 쌀을 씻고, 반찬거리를 꺼내고 채소를 다듬고 조리를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엔 설거지와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집안일을 마무리 지은 후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틈틈이 구상해놓은 만화를 그렸다. 모든 일을 끝내니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씻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자리에 누워 생각해보니, 오늘 갑작스레 공허함을 느낀 것은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았다. 루틴으로 몸에 익숙한 저녁밥과 집안일, 개인적인 작업을 하는 동안은 공허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거다. 

 평소에 지겹고 귀찮게 여겨지던, 매일 해야 하는 똑같은 일들의 쓸모를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눈뜨면 해야 하고 축적되기는커녕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고야 마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이 있어 내가 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커졌던 마음의 구멍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 새벽같이 출근해서 근무하고 퇴근 후엔 도서관에 와서 하루치 글을 쓰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평소처럼 이런저런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마음속 공허함과 외로움의 크기가 커질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 건지, 거기 한없이 빠져있을 만한 여유가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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