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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un 03. 2024

다섯 번째 욕구

  

 남편은 작년부터 팀장 진급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근무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아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진급 대상자가 되기 위해 그가 들이는 노력은 상당하다. 

 회사 생활 외에도 직무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말이면 나와 아이와 함께 공공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가 수험서를 푸는 동안 나는 책이나 신문을 읽고, 아이는 어린이 열람실에서 주로 만화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평일에는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서 단지 내 독서실로 향한 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소위 ‘사회생활’에도 열심이다. 회사의 대표와 각 부서의 책임자들과 함께 골프를 치는 건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주말 중 하루, 보통 일요일 오후면 골프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외출한다. 충청도 어디에 있다는 대표의 세컨하우스에 두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하는 것 또한 승진을 위한 주요한 ‘사회생활’임에 틀림없다.


 모처럼 주말 2박 3일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남쪽 지방에서 열리는 영화제 구경도 하고 근처 숙소에서 쉬다 올 생각이었다.

 여행을 일주일 남짓 앞두었을 때 남편이 조심스럽게 여행을 미룰 수 있는지 물었다. 연휴가 낀 그 주에 팀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앞뒤로 휴가를 내어 사무실에 책임자가 공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번 기회에 눈도장을 찍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했던 진급을 올해 하반기에 노려볼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에게 6월은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다. 조금이라도 책잡힐 일은 하지 않고 회사 내 주요한 일정에 빠짐없이 참석해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는데 무척 애쓰는 눈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진급을 위해서라는데. 여행을 가도 마음이 편치 않을 남편 생각에 예약한 숙소와 사전 예매한 영화제 입장권을 모두 취소했다.   


 아내로서 남편의 승진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건 없다. 드라마에서 본 장면으로, 남자 직원들의 아내들이 사모임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내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모임에 속한 아내들은 각자의 나이나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남편의 직급이 곧 아내의 직급이며, 상명하복의 관계가 분명하다. 직급이 높은 아내에게 선물이나 아부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며 김장이나 제사, 집들이와 같은 대소사에 참여해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선다. 다 남편의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다.

 직접 물어본 적 없지만,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 그러한 문화는 없는 것 같다. 남편의 승진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를 회사에 내어주고 불만을 표하지 않는 정도이다.      

 금토일. 회사에 남편을 내어준 주말 저녁이었다. 이번 ‘사회생활’은 골프와 세컨하우스 집 단장으로 채워진 일정이었다.

 빨랫감을 내놓고 저녁을 먹는 남편 맞은 편에 앉아 주말이 어땠는지 묻는 나에게 그는 피로감을 짧게 호소하고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00기사 이론 공부하다가 알게 된 이야긴데,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욕구가 있데.” 


 첫 번째,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인 생리적욕구. 두 번째, 위험에 대비하려는 안전의 욕구. 세 번째,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함께 하고 싶은 사회적 욕구. 네 번째,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존경의 욕구. 마지막 다섯 번째,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 

 나도 교육학이니,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들어본 이야기였다. 남편의 말인즉, 이번 진급을 통해 자신은 네 번째인 존경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욕구는? 남편과 자아실현의 욕구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눴다. 나는 자아실현에 성공하는 사람 자체가 드물며 주로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소수의 예술가들만이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남편은 자아실현이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에게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지금까지의 진급과 다르게 한 부서의 책임자가 되는 이번 승진이야말로 자아실현의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기를 굳이 꺾고 싶지 않아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과 자아실현을 한 번에 이뤄내라고 응원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나는? 세 번째 욕구부터 어째선지 막연해지는 느낌이다. 누구에게서 존경을 얻어내고, 무슨 수로 자아를 실현한담?

 나 역시 남편의 승진을 진심으로 고대한다. 승진 소식을 들으면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남편의 욕구이자 성취이다. 나의 욕구는 어디에 있으며 무슨 수로 채울 수 있을까. 나의 욕구는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가정에서의 의무와 책임을 최대한 덜어주어 남편이 회사의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내가 하는 ‘내조’의 전부지만, 나의 욕구 실현을 위해 그에 상응하는 걸 남편에게서 ‘외조’라는 이름으로 구할 수 있을까. 

 처음 품었던 의문은 회의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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