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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y 21. 2024

나는 000이에요.

<나는 유급 노동자예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예요. 오늘도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여섯 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예요. 가장 먼저, 삶에 주체성을 갖고 싶어서 일을 합니다. 전업 주부의 노동을 폄훼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살림이나 육아를 하면서 성취감이나 자기 효능감 같은 걸 잘 느끼지 못했어요. 매일 어지러진 집안을 정돈하고 가족의 끼니를 차리고 아이를 정서적으로 돌보고, 학습 시키는 모든 일은 어째서인지 만족감보다는 답답함만 남겼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게 없다고 자책하고나면 괴롭고 우울해져만 갔어요. 어째 나란 사람은 쓸모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거든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단순 노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터에선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할 일이 있잖아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해도 일의 끝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매일 찾아오는 퇴근시간은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매일 퇴근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임금이 지급된다는 사실도 무척 좋아요. 최저임금에 주휴 수당을 더한 돈이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입금되요.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는 숫자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그렇지 않아요. 살림과 육아는 퇴근도 없을 뿐더러(물론 시간을 더 자율적으로 쓸 수 있긴 해요),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주어지지 않거든요. 나는 매월 5일, 월급날 전후로 많이 행복하답니다.

 

 일터에서 동료나 손님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제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집에 있으면, 정말 잘 나가지 않거든요.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다보면 어느샌가 고립된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고립은 좋지 않아요. 혼자가 편해 집에 머무르다보면, 어느샌가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져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쓸데 없는 걱정도 늘고, 뭐 하나 내세울게 없는 자신을 점점 더 혐오하게 되요. 

 동료들에게 지적받거나 일터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져요. 하지만 그것도 여러번 겪다보면 일종의 면역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일하면서 처음 며칠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어요. 내가 한 바보같은 실수를 곱씹다 이불킥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에요. 그러다 괜찮아졌어요. 뭐, 실수 할 수도 있지.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런 마음의 변화는 저에게 있어 큰 발전이에요. 

 계산을 틀리고, 포장을 잘 못해도 그러니까 이런 저런 실수를 저지르는게 내가 바보라는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이런 저런 실수를 하며 일한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요. 

 경제적인 여유도 일을 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돈을 벌지 않을 땐, 나를 위해 돈 한 푼 쓰는 것에 벌벌 떨었어요. 카페에 가거나, 책을 사 보는 것이 다 낭비로 여겨졌어요. 

 우리집은 오랫동안 외벌이 가정이었어요. 아내가 전업 주부이면, 남편이 버는 돈을 함께 쓰는 건 당연한 일이죠.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분명 나의 몫이 있을 테니까요. 남편이 바깥에 있는 동안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아내의 역할을 무시할 순 없어요.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딘지 비뚤어진 개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어요. 전업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 쯤으로 여기는 못난 마음말이에요.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싹텄을까 고민한 시간이 있어요. 혼자 결론 내리길, 아무래도 부모님(엄마)의 영향과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어느 시점에서는 집에 있는 엄마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해 물질적 풍요와 기회를 줄 수 있는 엄마를 선호한다는 말,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맞벌이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 그런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요. 

 경제적으로 무능하면, 그러니까 돈을 벌지 못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괴상한 신념을 갖고 있기도 해요. 20대 짧지 않은 시간을 백수로 지낸 적이 있어요. 스스로를 식충이, 즉 밥만 먹는 벌레처럼 바라봤던 시기에요. 도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고치는 걸까요. 무능함이 들어날까봐, 모두에게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질까봐서 일하는 마음도 분명 존재한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시간제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고소득은 커녕, 그야말로 일한 시간 * 최저임금(+주휴수당)의 비교적 적은 돈을 벌어요. 그래도 돈을 쓰는 것에 훨씬 마음이 편해요. 책방이나 카페에 가는 것, 입고 싶은 옷을 사고 무언가 배우는 데 수업료를 치르는 것,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는 것 정도는 내 수입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요. 남은 돈은 저축도 하구요. 나는 내가 버는 돈으로 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다행스럽게 여겨져요. 

 언젠가 내가 원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은 소망이 있답니다. 무언가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요. 이를테면 청탁을 받아 글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려서 돈을 버는 거예요. 얼마나 멋진일일까요. 

 이미 유명해진 작가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을 보면 그들 대부분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 노력과 좌절을 해왔어요. 아직 창작으로 버는 수입이 충분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가들도 많이 들어봤어요. 

 나는 평범한데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부끄럽지만 노력도 하고 있지 않아요. 취미인냥 드문드문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정도예요. 그래도 꿈을 꿀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 그냥 혼자 꾸는 꿈이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저 꿈만 꾸고 행동하지 않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때는 그게 부담스럽고 민망했는데 이젠 고맙고 기뻐요.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꿈을 이뤄야지 하는 부담감도 없이 그냥 좋아요. 힘내서 꾸준히 쓰기라도 해야지, 정도로 생각해요. 

 나는 언제까지 유급 노동자로 살 수 있을까요?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결국 암울한 결론으로 닿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유급 노동자인 내 삶에 충실하며 살고 싶어요. 조금더 보태자면 '꿈을 가진' 유급 노동자로써의 내 삶이요. 

 노동자의 정체성을 벗어나면 '나는 실업자다', '나는 전업주부다'라는 글을 쓰게 되겠죠. 미래의 정체성은 알 수 없는 영역이네요. 그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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