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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ug 12. 2024

도쿄 바게뜨 6개월 차 위기를 맞다

 오늘 퇴근을 하며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오는 금요일 사장님께 퇴사 의사를 밝히리라 마음을 먹으며 매장을 나섰다. 

 퇴근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하던 나였지만, 6시간이 넘게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게 떠올라 조금 걸어 메가커피 매장에 들러 아샷추로 갈증을 달래고 차에 올랐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핑돌았다. 20분이나 일찍 출근을 했지만, 근무 시간 내내 잠깐의 여유도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첫번째 이유는 내가 손이 느려서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장님에게 '일 잘한다'고 신뢰를 받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손도 서툴고 속도도 느리고 요령도 없는 편이다. 게다가 내가 일하는 매장은 최근 리뉴얼 공사를 마쳐서 포장지나 각종 도구(?)의 위치가 바뀌어서 헤매는 경우까지 허다하다.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데다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타고난 눈썰미까지. 여러모로 나란 사람은 대형 프렌차이즈 제과점에서 근무를 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유난히 바빴던 두 번째 이유는 새로 바뀐 파트너 때문이다. 그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장님의 둘째 며느리로 사장님의 권유로 지난 주부터 주 3회 매장에서 근무를 한다. 오늘은 그와 둘이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한 첫날이였다. 

 내가 일하는 매장은 오전 시간 두명이 함께 파트너로 근무를 한다. 보통 그 중 한 명이 퇴사를 하면, 퇴사하기 최소한 하루나 이틀 전에 인수인계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새단장을 마치고는 인수인계하는 퇴사자가 없이 나홀로 매장을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인수인계는 물론 업무를 가르치는 일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싫다. 나를 가르쳤던 직원들은 어린 나이에도 절도가 있었고 때론 정신이 번쩍 들만큼 세게 말할 줄도 알았다. 나는 그런건 해본 적도 없고 죽었다 깨도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순간이 드디어 찾아오고 말았다. 이 상황을 피하는 방법은 내가 모든 걸 평소처럼하고 새로온 직원은 알아서 배우는 것(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짐), 또는 내가 퇴사하는 것.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이유는 평소보다 많은 물량 때문이었다. 일단, 빵이 많이 나왔다. 둘이서 온전하게(?) 근무할 때보다 빵의 종류와 수가 모두 많아졌다. 게다가 썰고 크림을 넣는 등 작업이 필요한 빵은 혼자 도맡아했다. 그냥 양이 너무 많았다. 너무 너무 많았다.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조금 쉬는데 양쪽 다리에 번갈아 쥐가 왔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느끼며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 났다. 아픈 다리를 아주 조금씩 마사지하며 풀어주는 내내 "괜찮아. 괜찮아." 혼잣말을 했다. 다행스럽게 다리가 잘못된건 아니었는지 천천히 쥐가 풀어지고 발을 땅에 디딜수 있었다.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부모가 싸우는 사이 상처받은 아이라든지 어릴적 학대로 마음에 병이 생긴 가장이라든지. 평소보던 흔한 이야기들인데 흐느끼며 시청했다. 마음이 많이 힘들구나, 싶어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 숱하게 저질렀을 실수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괴로워졌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집을 나서야겠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 사장님의 둘째 며느리에게도 두려움을 이기고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어야겠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할 일은 해야하니까. 좀 서투르고 버벅대도, 누구처럼 기깔나게 일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보다는 나은 내일이면 된다,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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