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사를 하나 읽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우울해서 빵 샀다”는 메시지에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반응을 보인 ChatGPT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연하게도 기사를 읽기 며칠 전, 비슷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 메시지를 보낸 오후, 정말인지 우울했다.
요즘 기분을 크게 좌우하는 건 아들과의 관계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들에게 불편하고 싫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잔소리와 공부를 강요하는 존재, 함께 있어서 좋을 일이 없는 존재가 바로 엄마인 ‘나’인 것이다.
왜 엄마를 싫어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들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머릿속과 무의식에는 온갖 불안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 것 같다. 이렇게 공부를 못해서,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어쩌나. 제 주변 정리도 못 하는데 제대로 된(좋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으려나.
온갖 걱정과 불안, 부정적인 세계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척, 아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믿어주는 척 꾸며낸 모습을 한 채 아이 앞에 서지만 아이 눈에는 다 보일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믿지 못하며 행여 실패자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대한민국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로 보이는 ‘저출산’, ‘고령화’, ‘청년 고립’, ‘남녀 갈라치기’에 관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탐독하는 악취미가 있는데 그건 나의 부정적인 세계관과 일치해서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선택받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세계관은 결국 자조로 이어지고 만다. 그간의 삶과 노력에 대한 부정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까지. 나의 세계는 이렇게 끝도 없이 어두워지고 만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정말인지 피곤한 일이다. 우울함이나 무기력, 짜증과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우울해서 옷을 사고, 우울해서 공연을 보고 우울해서 새로운 걸 배운다. 하지만 정작 바꿔야 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나에 대한 불신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오늘 오전, 영어 회화 모임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누군가 청년 고립에 대한 주제를 꺼냈고 자연스럽게 외로움이나 우울함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떨 때 우울함을 느끼는지,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을 공유했다. 한창 대화가 이어지는데 처음 ‘청년 고립’ 이슈를 꺼내놓은 이가 ‘우울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소 분위기가 침울해지긴 했지만 나는 우울함이나 고립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좋아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다는, 각자 외로움을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거기 모인 모두가 조금씩은 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받았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성향을 버리고 ‘긍정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그런 세계관이 전부인 듯 세상에 벽을 치고 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어딘가 어두침침한 성향 그대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불안해질 때 나만 그런 게 아니란 사실에 위로받고 싶다.
외로워서 빵과 옷을 샀다고 투정을 부릴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누군가의 외로움과 불안에 귀 기울이는, 부디 Chat GPT보다 나은 공감 능력을 가진 ‘휴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