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를 원해요

by 김모씨

오랜 기간 무직으로 지내다 유급 노동을 시작하던 때 그저 돈을 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용돈으로 쓰기에 충분했고 경제적 무능에서 벗어난 게 마냥 신기하고 뿌듯했다. 그때 하던 노동은 일손이 필요한 지인들을 돕는 일이었다. 비교적 편안한 근무 환경에서 너그러운 시급을 받는, 소위 말하는 ‘꿀알바’를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된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돈을 벌지 못하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편하게 돈을 벌었더라도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인맥을 바탕으로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은 일자리였으니 법적으로 보장되는 건 없었다.

새로 일자리를 찾으며 ‘최저임금 및 주휴수당 지급, 4대 보험 가입’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이 보장되는 것과 다르게 주휴수당이 지급되는 곳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주휴수당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유급휴일수당으로, 근로기준법 제정 시부터 도입된 제도이지만 2018년 개정되며 강제성을 갖게 되었다. 유급‘휴일’수당이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안 나가도 되는 돈이라 여겨질 테다. 그래서인지 한 주에 15시간을 넘지 않는 일자리가 많았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까 불안한 마음에 초단기 아르바이트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돈이 아쉽다면 ‘n잡러’가 되는 방법도 있다며 타협하려는 마음이 든 적도 여러 번이다.

세 번의 면접 만에 주휴수당이 지급되는 일자리를 구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 매장의 서비스직이었다. 파릇파릇한 20대들 사이에서 유니폼으로 지급된 티셔츠와 빵모자를 쓰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 일했다. 업무를 빨리 익히기 위해 집에 가서 빵 이름과 핸드폰으로 찍어온 포스기 메뉴를 연습장에 쓰며 열심히 공부(?)한 덕인지 큰 실수 없이 새 일자리에 적응할 수 있었다.

기다리던 첫 월급을 받은 날, 최저시급에 한달 근무시간을 곱한 ‘기본급’에 ‘주휴수당’가 더해진 숫자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무직으로 지내는 동안 국민연금에 임의 가입해 자비로 납부를 해왔는데 4대 보험으로 보장되니 부담이 줄어 좋았다. 용돈과 보험료, 통신료를 내고 남은 돈은 그대로 저축했다. 매달 월급날 예금통장의 숫자가 늘어가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쏠쏠한 재미’를 잊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근무를 하는 나는 공휴일이라도 평일이면 근무를 한다. 삼일절과 국회의원 선거일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에서 빈둥대느니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해 한 푼이라도 버는 것이 낫다 생각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날 ‘유급’으로 쉰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고 학교와 회사가 쉰다고 며칠 전부터 들떠있는 남편과 아들을 보며 무시하려 애썼다.

연휴로 이어지는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부터 출근길에 한숨이 나왔다. 추석 연휴에는 매장으로 몰려오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을 ‘기어 나온다’고 표현했으며, 명절 당일 저녁 가족과의 모임에서 “화가 났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

더욱더 참기 힘든 건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다른 처우를 실감할 때였다. 내가 일하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에는 두 종류의 근로자가 있다. 나처럼 매장에 직접 고용된 아르바이트생과 본사에 소속된 직원은 하는 일과 월급 받는 곳도 다르고, 당연히 복지에도 차이가 있다.

매장 뒤편에 마련된 주방에서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드는 업무를 하는 직원은 본사 소속 제빵 기사인데, 주기적으로 교육과 점검(?)을 위해 역시 본사 소속 관리자가 종종 매장을 방문한다. 워낙 공간이 협소해 일하는 동안 본사 직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게 되는데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교육과 품질 점검보다 주로 성과급과 퇴직금과 같은 회사의 복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일하는 틈틈이 귀동냥으로 이번 여름 휴가비가 작년보다 10만 원 올랐다는 것, 얼마 전 15년 가까이 근무한 후 퇴사한 누군가의 퇴직금이 0천만 원이라는 것, 10년 근속을 하면 포상으로 주어지던 순금이 금값 상승으로 현금으로 대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타인과의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초심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주휴수당에 행복했던 때, 월급날 예금통장에 돈을 이체한 후 느꼈던 뿌듯함을 복기했다. 그런 시도들이 먹히지 않을 땐 무직이었던 때를 떠올렸다. 옷 사 입고 미용실 가는 일에 자책감을 가졌던 예전보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건 확실하니 말이다.

정신 승리 혹은 자기 최면의 시도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원하는 조건들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결국 나는 이직을 마음먹었다. 구직 사이트를 뒤지는 게 전부이지만 매일 일자리를 찾아보며 이직을 꿈꾼다.

이번에 세운 기준은 ‘연차 및 휴일 수당 보장’이다. 하는 일의 종류나 나의 적성과 앞으로의 비전은 다음 문제이다. 명세서의 ‘주휴수당’ 항목에 기뻐했듯이 한 달 일하면 하루 생기는 연차. 일 년 만근 후 주어지는 일 년 치 연차. 그걸 나누어 쓰며 미소 지을 날을 꿈꿔본다.

작가의 이전글1박 2일 아빠 관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