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아빠 관찰기

by 김모씨

집에서 먼 곳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차로 3,40분 정도 걸리는 수업 장소는 아직 운전이 미숙한 나에게 부담스러운 거리에다 수업이 끝난 후 밤 운전을 하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러 번 환승을 해야 해서 망설여졌다.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떠올린 것은 부모님 댁이었다. 그곳은 내가 자신 있게 운전해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고, 교통편을 검색 해 보니 본가에서 수업 장소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수업이 있어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돌아와도 되니 야간 운전의 부담도 없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열 시가 조금 안 되었는데 아빠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엄마는 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평소 자는 시간보다 이른데다 휴일을 앞둔 금요일 밤이었지만 나도 군말 없이 씻고 자리에 누웠다.

텔레비전도, 와이파이 연결도 없이 냉장고 옆에 마련해둔 임시 잠자리에서 모처럼 푹 자고 눈을 뜨니 엄마는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삶은 감자와 달걀, 토마토와 구운 식빵 조각이 작은 식탁 위에 차려져 있었다.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바쁜 엄마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잠에서 깬 아빠가 화장실에 다녀온 후 접시에 먹을 걸 담아 ‘자기 자리’로 갔다. 최근에 아빠는 1인용 소파를 샀다. 엄마 말로는 마치 “뿌리 내릴 듯” 그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신단다. 그렇게 거실 가운데 자리 잡은 새로운 가구는 ‘아빠 자리’가 되었다.

아침만 먹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우리 집과 또 다른 여유와 편안함이 좋아 거실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배경음악처럼 조용히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다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아빠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왔고 나는 아빠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처럼 아빠는 오전 내내 소파에 앉은 채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신 후 약을 챙겨 먹었고, 라디오를 듣는 건지 깜빡 잠이 든 건지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역시 소파에 앉은 채 팔을 뻗어 어항 속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었다. 자세히 보니 모든 활동이 소파에서 이루어지게끔 신경 쓴 티가 났다. 핸드폰, 리모컨, 각종 약병과 텀블러, 손톱깍이와 휴지통까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소파를 가운데 두고 손이 닿을 거리에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아 오전을 보낸 아빠는 점심을 드시고 매일 같은 목적지를 향해 집을 나선다. 버스와 지하철로 근처 신도시에서 도착해 산책을 하고 카페에 들렀다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후 루틴이었다. 더워진 날씨에 외출하는 것을 걱정하니 날이 더우면 박물관이나 실내 쇼핑몰 내부에서 시간을 보낸다며 괜찮다고 하신다. 매일 같은 곳을 걷고 구경하는 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의아해하는 나에게 정해진 목표 걸음 수를 채우고 쇼핑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며 최근에 산 열쇠고리며 손가방을 보여주신다. 이 소파도 그렇게 쇼핑하며 눈여겨보다 구매한 것이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에야 겨우 소파에 앉아 본 나는 꼼짝하지 않고 “뿌리 내릴 듯” 같은 자세로 오후를 보냈다. 여섯 시가 되어 돌아온 아빠는 어김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오전에 그랬듯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과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궁금한 적이 있다. 사교적인 엄마와 달리 사람 만나는 일이 좀처럼 없는 데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취미 활동을 즐기는 모습도 거의 보이신 적이 없기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종일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진 않을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지내다 보면 너무 우울해지는 건 아닐까?

하룻밤 자며 지켜보니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은 틀린 것 같았다. 아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유로우면서도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습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부모님 댁에서 보낸 나의 토요일은 평소 주말과 많이 달랐다. 보통의 토요일이라면 주중에 하지 못한 독서와 글쓰기를 한다며 이른 아침부터 책이나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향하거나, 이런저런 모임과 수업에 참여하는 등 일정을 채워 넣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계획과 만남에 기진맥진한 채 주말을 마무리하는 일도 잦았다. 시간 활용을 잘해서 주말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아빠를 관찰한 후 깨달은 건 우리 부녀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매일 정해진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은 생활을 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자기 모습 그대로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아빠를 보며 굳이 바꾸려 애쓰지 않고 내가 편한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한 것보다 오랜 시간 부모님 댁에 머물다 집에 돌아왔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아빠와 나는 같은 공간, 각자의 자리에서 토요일을 보낼 것이다. 어쩐지 수업만큼이나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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