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진심

by 김모씨

첫 출근을 앞두고 잠을 설쳤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뜨여 가만히 꿈의 내용을 떠올려보다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꿈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나의 걱정과 불안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대범한 척해도 나는 무의식부터 소심한 사람이다.

꿈에서도 나는 첫 출근을 한 상태였는데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라 쭈뼜거렸으며, 책임자로부터 몸이 왜소하다고 핀잔을 들은 후엔 보기와 달리 강단이 있다며 어필을 하기도 했다. 결국 성인 남성을 봉투에 담아 옮기는 일을 지시받은 나는 범죄 현장의 시체를 은닉하는 듯한 다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에 대한 인식보다는 나보다 큰 저 물체(?)를 어떻게 잘 운반할지에 대해 걱정했다. 꿈의 내용은 모두 한 가지 생각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출근 준비를 마치고 평소처럼 달걀 두 개를 삶아 요기한 후 영어 회화 방송을 틀어둔 채 입을 중얼거리며 버스 도착 정보 앱을 열었다. 아무리 새로 고침을 눌러도 도착 정보가 뜨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를 놓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차가 하염없이 늦어져 지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서기로 했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전하니 왜 벌써 나가냐며 놀라는 눈치다. 최적 경로 검색으로 1시간 11분 걸리는 교육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집을 나선 때는 오전 7시. 교육 시간보다 2시간 반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정류장에 가자마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전철로 환승하는 코스였는데 전철은 정각에 도착하기에 펼쳐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없었다. 이렇게 가다간 교육 시간보다 한 시간 반 넘게 일찍 도착할 터, 맞이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출발역에서 40분, 중간에 한 번 더 하차해 30분 남짓 보낸 후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문자만 주고받았던 소장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교육을 들었다. 딱딱한 내용보다는 실제로 벌어진 에피소드를 예시로 이야기하듯 이루어져서 많이 웃으며 긴장이 풀렸다. 오전 교육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도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하는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오후엔 앞으로 근무하게 될 역에 방문해 인사도 나누고 현장 업무 교육을 받았다. 함께 일할 반장님, 동료들과 간단히 담소를 나누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처음 접한 업무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오전 교육을 담당하신 소장님은 화장실 청소나 토사물 처리 같은 궂은일만 익숙해지면 큰 어려움 없이 오래 근무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타인이 사용하는 공공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것, 거기다 이성(異性)의 공간을 침범(?)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테다. 면접에서 가장 처음 받은 질문도 화장실 청소에 대한 것이었고, 처음 동료들을 대면한 순간에 누군가는 나를 보고 ‘화장실 청소하다 도망갈 것 같다’는 우려를 솔직히 표현했다.

화장실 공간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일단 땀이 많이 나서 놀랐다. 선배의 설명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청소를 하는 동안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눈이 따가웠다. 목은 타오고 얼굴을 잠시 훔쳐 닦을 겨를도 없이 청소를 마무리했다. 둘이서 여자, 남자 화장실을 순서로 모두 마무리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름 긍정적인 건 화장실 청소가 생각했던 것보다 할 만하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 아닌, 그저 내 집 화장실 청소의 확대된 버전일 뿐이었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도 막상 해보니 빨리 마무리하는데 정신이 팔려 이용자들은 눈에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흔히 미화 업무를 그림자 노동이라 하는데 한 공간에 존재해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다음에는 꼭 마실 물과 시원한 목 수건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첫 임무를 마쳤다.

퇴근 전까지 동료를 따라다니며 역사 곳곳을 청소하는 동안에도 땀을 많이 흘려 샤워를 해야 했는데 준비된 게 없어 동료의 목욕용품을 빌리고 휴지로 대충 몸을 닦아야 했다. 옷을 갈아입고 잠시 앉아 내가 사용할 휴게 공간과 근무에 필요한 물품들을 메모했다. 샤워용품, 마스크, 자외선 차단 제품에 체력 소진이 많아 도시락은 물론 간식과 같은 먹거리도 필수였다.

다음 날이 휴무라 생활용품 가게를 돌며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당분간 먹을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영양소를 고루 갖춘 도시락과 바닥에 깔 1인용 매트와 슬리퍼까지 장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우고 남을 만큼 짐이 많았다. 누구 말마따나 화장실 청소 못 하겠다고 도망가기는커녕 청소와 휴식에 진심을 담아 꼼꼼히 물건을 싼 짐가방을 보니 또 웃음이 나왔다.


내일이면 일한 지 딱 일주일이 된다. 어제는 처음으로 홀로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이었는데 반장님이 친절하게 메모해둔 목록을 보고 열심히 돌아다니며 빠짐없이 청소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두 시간 동안 온몸이 젖을 만큼 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청소했다. 이번에는 목에 넥쿨러를 걸고 청소 카트에 둔 얼음물을 틈틈이 마시며 열기를 식혔다.

다음 주는 오전 근무다. 새벽 청소는 어떨지, 역사에는 밤새 어떤 쓰레기들이 쌓여있을지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이번 주에 그랬듯 나는 잘 적응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노동에 진심이니 말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피부과 시술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