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플렉스

by 김모씨

얼마 전 그만둔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는 1년 6개월을 근무했다. 주 15시간 이상 일했으니 퇴직금 지급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존에 퇴사 후 재입사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퇴직금을 받았는지 물었을 때 다들 손사래 치거나 묘하게 대답을 피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사장님에게 대놓고 돈 얘기를 꺼낼 만큼 대범한(?) 성격도 아니라 혼자서 속앓이를 해야 했다. 혹시 퇴직금이 입금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최후엔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두고 전전긍긍하다 잠까지 설쳤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일주일 후 월급날이 되었다. 지난달 급여에 퇴직금을 더한, 평소보다 큰 금액이 입금되기를 바라며 수시로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은행에서 온 알람에 적힌 금액은 평소 받는 월급, 딱 그만큼이었다. 지금이라도 문자를 보내야 하나, 왜 돈 주는 사람은 이렇게도 돈 받는 사람 심정을 모르는 걸까. 내 돈 받는데 왜 마음고생을 하고 얼굴을 붉혀야 하나. 짧은 순간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스쳤다.

잠시 후 메신저로 월급 명세서가 첨부되었다. 덧붙인 사장님의 한마디, “퇴직금은 다음 주에 입금해줄게.” 당장 입금되진 않았지만 메시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월급과는 조금 다른, 일종의 보너스를 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다음 주에 퇴직금이 입금되면 생활비에 보태거나 저축액을 늘리는 대신 뭔가 특별한 것, 평소에 해보지 못하는 일종의 플렉스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뭘 하면 좋을까?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건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매달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용돈 명목으로 입금을 한다.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인데도 부모님은 아르바이트하느라 힘들게 고생한다며 부담스러워 하셨다.

청소일을 하기로 결심한 데는 어느 정도 부모님 영향도 있었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적은 돈이라도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용돈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이 앞선 생각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화나 장례용품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 방문해본 장례식장에서 자녀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 제공되는 장례용품을 보고 무슨 일을 하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은 아직 입금되지 않았지만, 월급에서 백만 원을 떼어 부모님께 먼저 부쳐드렸다. 평소보다 큰 액수에 곧바로 아빠가 전화로 무슨 일이냐 물으셨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고, 부모님 덕분에 새로운 회사에 취직도 했다며 돌아다니며 예쁜 옷 있으면 사입으시라고 하니 처음엔 괜찮다 하시더니 결국엔 그러마 하셨다.

누군가는 부모님께 집도 지어드리고 차도 바꿔드리고 하다못해 명품도 사드리는데 겨우 용돈 얼마도 거듭 사양하시다 받으시는 아빠에게 죄송스럽고 또 한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퇴직금을 받기도 전에 플렉스를 먼저 해버렸다. 오늘은 화요일, 사장님이 약속한 퇴직금은 언제쯤 입금되려나.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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