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포스적인 면

by 김모씨

6시 30분부터 근무하는 오전 업무는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한다. 오후 근무조가 퇴근한 밤 열 시부터 8시간이 넘게 방치(?)된 화장실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양쪽 플랫폼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비우지 않으면 쓰레기통은 포화상태가 된다.

급한 일을 처리한 후엔 역사를 구역별로 청소하는데 요일별로 번갈아 가며 쓸고 닦는 일을 한다. 첫 출근을 하고 다음 날, 내가 맡은 구역은 바깥 광장이었다. 역사 밖을 크게 한 바퀴 돌며 담배꽁초나 일회용 컵 등의 쓰레기를 치우는데 요즘은 낙엽도 함께 쓸어내야 한다.

처음엔 낙엽을 치우는 일이 고역스러웠다. 넓은 광장 여기저기 흩뿌려진 낙엽을 한 사람이 빗자루로 치운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빗자루로 쓸어내도 떨어지는 나뭇잎에는 속수무책이라 소용없는 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떼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싹 싹’ 반복되는 빗자루 소리가 들려왔다.

자전거도로를 경계로 안쪽은 역사 미화 직원이 바깥쪽은 지자체 환경미화원이 청소를 맡는데 그 소리는 지자체 환경미화원이 낙엽을 쓰는 소리였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길 건너에서도 이른 시간부터 빗자루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보이는 분이 단지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전거도로와 아파트 입구에는 낙엽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차피 치워도 돌아서면 다시 떨어지는 낙엽을 누군가는 열심히 쓸고 있었던 것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그대로 두면 길에 쌓일 것이고 보기에 좋지 않을뿐더러 보행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난생처음 하게 되었다.


며칠 후 다시 빗자루를 들고 광장에 나왔다. 낙엽과 싸워봤자 내가 질 것이 뻔할 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내 속도로 빗자루질을 하기 시작했다. 빗자루를 쥔 손이나 허리가 아프면 속도를 늦추고 걸어 다니며 담배꽁초를 줍다가 다시 낙엽을 쓸었다. 내일도 모레도 나뭇잎은 떨어질 테고 나는 낙엽을 쓸기 위해 매번 빗자루를 쥐어야 한다는 사실에 문득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포스가 떠올랐다. 청소의 많은 부분은 반복적인 작업이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통을 비우는 일, 쌓인 먼지를 쓸고 닦는 일, 하물며 비둘기 똥을 제거하는 일까지.

사실 이런 생각이 처음 든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빵집에서 빵을 포장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루에 세 번씩 누군가 먹을 끼니를 준비하는 것, 아이 입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쓰고 아직 제 손으로 먹는 것이 능숙하지 못해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엎드려 손으로 주워 담는 일,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기저귀를 가는 것까지 반복되는 일상이 고역스러웠을 때도 나는 시지포스를 떠올렸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근무할 땐 내가 출근하기 전에 매장에 배송된 부재료와 완제 빵이 담긴 물류 박스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물류 상자에 담긴 짐을 빠짐없이 풀어놓고 제자리에 정리해두어도 빵을 만들고 파느라 재료는 소진되어 내일이면 정리해야 할 또 다른 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동에는 얼마간 시지포스적인 면, 그러니까 반복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좌절보단 위안이 되었다. 오직 나만이 다시 굴러떨어지는 돌을 밀어 올리는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일에서건 일상생활에서건 방금 한일, 혹은 어제 한 일을 다시 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어쩌면 이건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앞에 굴러떨어지는 돌을 보며 한숨을 쉬다 옆을 돌아보니 다들 나처럼 언덕을 향해 힘겹게 돌을 밀어 올리거나 내리막을 향해 구르는 돌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중이다.

반복과 지루함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제쳐놓고 내가 하는 일의 다른 면을 찾아보기로 한다. 하는 일이 어지르는 일이 아니라 치우는 일이라는 게 다행스럽다. 영원히 유지될 순 없지만 내가 지나간 자리는 이전보다 깨끗해져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지저분함보다 깨끗함을 선호할 터, 청소는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임이 분명하다. 일하는 중간중간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쓸모있는 일을 한다는 확신이 든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일지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먼저하고 어떻게 시간을 배분할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존재한다. 나는 힘든 일을 먼저 하는 걸 선호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중간에, 퇴근 전엔 다음 조를 위해 화장실과 휴지통을 점검해야 마음이 놓인다. 혼자 일하는 날은 보통 이런 루틴을 따라 근무한다.

시지포스와 다르게 함께 돌을 굴릴 동료가 있다는 사실도 큰 위안이 된다. 혼자 일할 땐 혼자인 대로 편하고 동료와 함께할 땐 또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내일도 나는 오늘 한 것처럼 화장실을 청소한 후 승강장의 휴지통을 비우고 역사 이곳저곳을 쓸고 닦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직업들과 같이 청소도 일의 한 종류이다. 나는 이 일을 선택했고 앞으로 오래 계속할 생각이다. ‘시지포스적인’ 면은 좀 감수하고서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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