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커피 때문에 온 건 아니에요.
첫 방문을 마치고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참고로 나는 파워블로거가 아닐 뿐 더러 댓글도, 이웃도 전무하다 싶은 그냥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다. 가끔 내가 쓴 글에 달리는 댓글은 어디서 무슨 경로로 왔을까 궁금한 작성자 이름이 사업체 이름인 이들로 ‘답방’을 부탁한다는 컨트롤 씨와 브이를 이용해 작성한 내용들 뿐 이었다.
그런데 나의 ‘동네 서점 방문기’에 누군가 댓글을 단 거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바로 그 서점 주인이었다. 놀란 마음에 읽어보니 글을 포스팅해주어서 고맙고 다음에 방문 시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놀라고 내 글이 부끄러워서 그 글에 댓글은커녕 ‘좋아요’도 누르지 못했다. 나의 낯가림은 온라인에서도 지속된다. 주인 입장에서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사업체를 홍보할 필요도 있어서 서점 이름을 검색하고 내 글을 우연히 발견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댓글을 하루에도 몇 차례 다시 읽어보았다.
며칠 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여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웬만해서는 집밖에 나가는 일이 없는 내가, 심지어 버스를 타고 그 서점에 가기로 했다.(버스를 마지막으로 탄 건 코로나 이전의 일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서점을 찾는데 꽤 오래 동네를 헤맸다. 드디어 서점이 보였다. 그런데 들어가기가 쑥스러웠다. ‘혹시 나를 알아보면 어쩌나?’부터 ‘공짜 커피 마시러 온 거라 생각하면 어쩌지?’ 그렇게 서점에 입구를 지나쳐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정말 이럴 땐 소심이 병이다.
태연한 척 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소리에 흠칫 놀라며. 인사를 건네는 서점 주인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가를 둘러보았다. 공짜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이 절대 아니라는 걸 강하게 주장이라도 하듯 책 몇 권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서 밀크티를 주문한다. 음료 값이 포함된 영수증을 받고나서야 안심한 나는 서점에 마련된 자리로 가서 음료를 마시며 구매한 책을 펼쳐보았다.
잠시 후 서점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맞으시죠?”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블로그에 댓글 주셨죠.”
“글도 올려주시고 감사해요.”
“아니에요, 방문자도 없는 제 블로그 도움도 안 될 텐데요. 뭐.”
서점 주인은 빳빳하게 핀 천원 다섯 장을 들고 다시 내 앞에 섰다.
“제가 음료 드리기로 했는데, 이거 받으세요.”
‘아, 이분도 만만치 않게 경우 있으신 분이구나.’
한사코 사양을 하다 “그럼 다음에 커피 한잔 주세요.” 하고 말해버렸다.
사장님은 그러기로 하고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애초에 동네 책방에서만 가능한 ‘발견 구매’를 하고 싶어 찾아간 서점이었는데 첫 날은 그럴 겨를이 없어서 내가 전부터 사려고 마음에 두던 책들만 사왔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원래 알고 있는 책에 이곳에서 처음 발견한 책을 함께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고 갔다. 그렇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첫 번째 책은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란 책이다. 책 띠지의 여자가 너무 예뻐서 샀고 살짝 들춰보니 자신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구매했다. 서점 입구에서 정체모를 부끄러움에 그대로 지나쳤던 나에게 어울리는 제목이기도 하고.
서점 한 쪽에 판매용이 아닌 책들이 꽂혀 있어 몇 권을 꺼내 넘겨보았다. 서점 주인이 읽던 책인 것 같았다. 색인지를 꼼꼼히 붙여놓았다.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책 한쪽 끝을 접어두는 사람이니 말이다. 구입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주인은 주문이 가능하니 집이 가까우면 찾으러 오라고 안내해준다. 그러기로 하고 연락처를 남겼다.
자연스럽게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주문한 책도 찾고 공짜 커피도 마시러 다시 서점을 찾을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