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 날.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하루였다. 아침 밥 먹고 치우고, 점심 대강 해결하고 치우고, 저녁에는 족발 사와서 먹고 치우고. 이렇게 하루가 갔다. 그 사이 사이에 돈키호테 5챕터, 여인의 초상 5챕터 그리고 토지를 약 80페이지 읽었다. 책이라도 읽어서 다행인가. 허무하게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니 항상 가슴에 품고 있던 커다란 궁금증이 또다시 떠오른다.
‘나는 책을 도대체 왜 읽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딱히 할 게 없어서’이다. 집안 꾸미기나 요리에도 취미가 없고 손으로 무얼 만드는 건 자신이 없다. 고등학교 가정 수업 수행평가로 버선을 만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 반 친구도 모자라 옆 반까지 바느질 구걸을 하러 다녔다. 기술 시간에 국기보관함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친구에게 일당을 주고 만들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뭘 만드는 것하곤 담 쌓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끈기 있게 보는 편도 아니다. 남들이 다 재밌다 하는 드라마도 어찌된 일인지 진도가 안 나간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집안일이나 육아이외에 남는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할 게 마땅치 않다. 그럴 때 책을 읽으면 시간이 잘 간다. 이야기에 빠져서 내 고민, 걱정 할 겨를이 없다. 읽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외에 세계와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든가 하는 것까진 모르겠다.
독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내일도 나는 틈틈이 시간이 나면 책을 펼치고 오늘 읽은 부분을 찾아 이어 읽어나갈 것이다. 가끔은 내일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잠에 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날 행복하다. 궁금했던 부분을 읽을 수 있어서.
책을 읽다가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되는 이야기, 누가 나를 관찰하고 쓴 게 아닐까 싶은 이야기를 만날 때 현실에서 얻기 힘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읽었다. 본문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박민정 작가가 쓴 후기를 읽고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다. 어린 시절 작가가 겪었던 일을 나도 겪었기에. 견딜 수 없어서 귀를 막고 눈을 감아야만 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 소녀였던 나와 그때의 마음을 떠올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가끔 해결되지 않은 것들, 의문이 풀리지 않은 기억들과 감정들을 책 속에서 마주할 때가 있다. 즉각적인 해답을 주지 않더라도 몇 십 년이 지난 기억들을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소중하다.
‘딱히 할 게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책읽기를 지속적, 의식적으로 계속해나가는 것은 결국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 하나하나 너무도 다른 인물들. 그 인물들을 만들어온 부모, 어린 시절, 학창시절, 상처, 사랑, 경험들. 나와 같은 또는 전혀 다른 면을 가진 인물들을 읽으며 나를, 나의 부모를, 나에게 상처로 남은 기억들과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어둠속에 무늬를 찾아가듯이 말이다.
책은 나에게 오락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소리 내어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있다. 휘리릭 지나가버리는 텔레비전 화면과 달리 나를 웃긴 그 부분을 원하는 만큼 반복해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설거지하다가 그 장면이 생각나서 혼자 깔깔 웃는 순간이 좋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설거지하다가 엉엉 운적도 있다. 그렇게 책은 나를 울고 웃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읽고 좋아하고 가끔은 집착한다. 소설 속에 책을 가까이 하고 아끼는 인물이 나오면 무조건적인 애정이 생긴다. 그의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책을 읽는 인물에겐 믿음이 생긴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헤쳐 나갈 거라는 믿음. 힘든 일을 겪어도 결국엔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그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다. '적어도 책을 읽고 있잖아. 결국엔 다 괜찮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