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상처받은 기억

by 김모씨

도서관 문화 수업에 열심히 참여 한 적이 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수업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수업에 등록했다. 수업 첫 날,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 또는 오래 수업을 같이 들어왔거나 모임을 통해서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 챘다. 강사를 아끼는 수강생들로 가끔은 팬클럽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수업이 좋아서 혼자 꿋꿋이 수업을 들었다.

상반기 수업을 마치고 하반기에 같은 강사님의 수업을 등록했다. 익숙한 얼굴이 많았다. 그들도 나를 알아봐주었다. 교실 맨 뒤편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하반기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후속 모임이 있으면 좋다는 의견이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 당시 나는 한 인문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함께 읽기’를 바로 끝낸 직후였다. 혼자 읽기 힘든, 소위 말하는 벽돌 책을 한 달 일정으로 나누어 읽고 매일 인상 깊은 구절과 소감을 카톡방에 공유하는 프로그램 이었다. 유료였다. 나는 사람들을 모아서 두꺼운 책을 20일 일정으로 나누어 공지하는 건 쉽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료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업을 들은 사람들에게 ‘함께 읽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은 호의적이었고 우리는 <사피엔스>를 함께 읽기로 결정했다. 나는 단톡방을 만들고 일정표를 만들어 공지했다. 일정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는 책을 준비하라고 공지했다. 그리고 매일 빠뜨리지 않고 내 분량의 숙제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소감을 공유하면 답글도 열심히 달았다. 참여한 수강생 모두 완독을 하며 첫 함께 읽기를 마쳤다.

몇 개월 후, 다시 같은 강사 수업에서 수강생들을 만났다. 한 수강생이 진행했던 ‘함께 읽기’에 대해 강사에게 말했다.

“저희 000(내 이름) 선생님 주도로 사피엔스 함께 읽었어요!”

맨 뒷자리에서 나는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혹시 칭찬해주려나 기대도 했다. 수업을 인연으로 후속모임으로 뭔가를 하는 것, 그것도 함께 책을 읽는 게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강사 입에서 나온 말은,

“무슨 책이요? 아. 사피엔스. 아... 그런 건 믿을 만한 사람이 이끌어야하는데.....”

난 정말 뜨악했다. ‘나는 사피엔스 같은 책 읽자고 나서면 안 돼는 사람이구나. 적어도 저 강사는 나를 그렇게 생각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상했다.

물론 나는 <사피엔스>라는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석해가며 도움을 주고 읽기를 지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능력 밖이다. 난 단지 두꺼운 책을 함께 읽어가고 싶었던 거다. 같은 분량을 읽어도 서로 다른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 뿐 이다.

그 때 등록한 수업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도서관 수업을 듣지 않았다. 그 강사를 좋아하는 수강생들이 모여서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간다고 나에게도 참여 권유 연락이 왔다. 줌 수업이 활성화 된 이후로는 도서관 강좌도 열렸다. 하지만 뒤끝이 긴 나는 좀처럼 수업을 들을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가끔 명쾌한 해석과 도움이 절실할 때도 있지만 요즘엔 그저 혼자 꾸역꾸역 읽어나간다.

쓰고 보니, 책에 상처받은 게 아니라 사람에 상처받은 기억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의도와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읽기’를 제안하고 진행했는지 설명한 적 없으니 그런 반응도 예상할 수 있다. 별거 아닌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자신이 옹졸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언젠가 강연장에서 ‘코스모스 읽으신 분?’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긴 읽었다. 함께 읽기로 두 번. 물론 다 이해 못했다. 정말 글씨만 읽는 게 이런거구나 하는 경험을 했다. 책을 읽었다며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강연자는 나에게 물었다. “아, 읽으셨어요? 지구가 탄생한지 몇 년 됐죠?”

소심하게 “사.. 사십 육억 년..” 이라고 대답한 것 같다. 강사는 내 대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강연을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손 들었어. 괜히 손 들었어.’

우연의 일치인가. 이 강연자가 바로 그 강연자다. 내가 <사피엔스> 함께 읽기 진행한다니 탄식하던. ‘강사님~! 강사님,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아직도 이해 못하는 책을 낑낑거리며 읽는다. 형식상으로만 완독을 끝낸 책도 많다. 무식이 들통날까봐 읽은 책을 읽었다고 말도 못한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었을 것처럼 생기고 싶다. 음. 결국은 생긴 게 문제인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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