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육아프로그램을 잘 챙겨보는 편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보다는 육아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마음으로 본다. 이제 9년차인데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하는 순간이 아직도 너무 많다.
아이들에게는 시기별로 유행 아이템이 있다. 작년부터 게임 캐릭터 딱지가 유행이었다. 오백 원부터 비싼 것은 육천 원이나 했다. 아들도 유행을 따라 딱지를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원 가방 하나 가득, 약 서른 개 남짓의 딱지를 모았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듯 아이들은 내 것을 던져 상대방의 딱지를 넘기는 놀이를 하고 놀았다. 놀이터에는 딱지치기를 하는 여러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넘어간 상대방의 딱지를 진짜 따먹는 ‘진판(진짜 판)’을 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아들에게 진판은 안된다고 말했고 아이는 내 말을 잘 들었다.
어느 날인가 집 앞에서 놀고 들어온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딱지 가방을 방에 가져다 놓았다. 딱지를 치고 돌아오면 여운이 남았는지 소파 위에서 집이 울리게 딱지를 치곤했는데 말이다. 방 안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가방이 허전하다. 딱지 개수를 세니 열 두세 개 뿐이다. 아이가 내 말을 어기고 진판을 했구나 싶었다. 옆에서 친구들이 진판을 하면 얼마나 하고 싶을까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백준아, 딱지가 많이 없어졌네. 딱지 어디 갔어?”하고 물으니,
“응. 딱지 가방 놓고 자전거 탔는데 없어졌어.”라고 대답한다.
아이가 진판을 했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당황했다. 정말 누가 훔쳐갔을까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앞으로는 가방을 잘 간수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아이가 걱정되어 놀이터에서 앉아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가 반갑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것 같았다. 놀이터에서 딱지를 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어떤 아이들은 장 볼 때 쓰는 수레에 딱지를 가득 싣고 나타났다. 그 중 한 아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끌고 무리 앞에 나타난 그 아이가 대뜸 하는 말. “얘들아, 형님 왔다!” 아이들이 몸을 날려 딱치를 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딱지는 팔의 힘만으로 치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말 그대로 몸을 공중에 잠시 띄웠다가 상대방의 딱지를 정확하게 공략하며 내리쳤다. 요령이 없는 아들이 약육강식의 딱지 세계에서 먹이사슬 최하위인 게 당연했다. 억울하게 딱지를 잃어 한 살 많은 형들에게 “이 사기꾼아!” 라고 외치는 당찬 여덟 살 아이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나 그때 딱지 진판 해서 다 잃은 거야.”
“정말? 너 00이한테 잃었지. 엄마가 보니까 00이 진판 하면서 애들 딱지 많이 따더라.”
“응. 맞아.”
“야, 걔 너무했다. 유치원 때부터 친군데. 엄마라면 열 개 따면 다섯 개는 돌려줬겠다.”
“앞으로는 진판 안할게.”
“그래. 속상하잖아. 진판한다 그러면 그냥 집에 와.”
그 후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다 ‘친구들이 진판 하자고 해서 왔다’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딱지치기의 열풍은 어느새 식어버렸다. 아이는 더 이상 딱지 가방을 들고 놀이터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딱지는 한 철 지난 아이템이 된 채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있었다.
며칠 전 아이가 대뜸 한다는 말이,
“엄마, 나 마지막으로 진판하면 안 돼? 이제 딱지 안 칠거야.”
당황했다. 언제나처럼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하지. 마지막이니까 잃든 말든 원 없이 하고 오라고 할까. 아니야. 육아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던데. 허락했다 말았다하면 아이에게 권위 없는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아. 모르겠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딱지가 없어도 괜찮아? 음. 그래도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근데 이제 딱지 안하긴 한데......”하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친구가 기다린다며 딱지 가방을 메고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정말 모르겠다.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현명한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걸까? 하루에도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아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엄마가 지금 답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에게 ‘올바른 지침’을 주지 못하는 엄마다.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나를 갈등하게 하는 많은 질문과 상황을 줄 것이다. 드물지만 확고하게, 대부분은 얼버무리고 때로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인정하며 그 상황들을 아이와 함께 넘길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현명함’이란 게 생겼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