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도 있네요

육아일기

by 김모씨

아이가 한글을 떼고 스스로 책을 읽게 되는 것을 ‘읽기 독립’이라고 한다. 이제 엄마가 읽어주는 독서에 더불어 혼자 책을 손에 쥐고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것. 그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아들은 한글을 조금 늦게 익혔고 책은 좀처럼 읽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멀리할까봐 두려웠던 나는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와 내가 한 자리에서 각자의 책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을 오래도록 꿈꿔왔다.


이제 아홉 살이 된 아이는 혼자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는 지 궁금하고 우려되어 독서 시간 이후에 책 내용을 문제로 내는 만행을 저지른 적도 있다. 언제부턴가 내용을 묻지 않고 아이가 알아서 책을 읽게 내버려두었다. 가끔 이래도 되나, 확인하고 잘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 책 읽느라 바빠서 아이를 챙기지 못했다.

매일 저녁 한 시간 남짓의 독서 시간은 웬만해선 꼭 지키려 한다. 아이도 이젠 익숙한지 크게 저항 없이 시간을 지킨다. 책 하나를 끝까지 읽지 않고 새로운 책을 집어 든다든가, 읽었으면 하는 책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애가 탄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 기억하려 한다.


어제도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아이가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 ‘코가 막혔나?’ 나도 아이도 비염이 있는 데다 환절기라 그러려니 싶었다. 아이는 계속 훌쩍 대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 눈이 빨개졌다.


‘설마, 책 보고 운거야?’


나에게도, 아니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니. 이야기에 빠져 감정을 이입해고 결국 눈물까지 흘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엄마 앞에서 항상 강해 보이고 싶어 하는 아이는 나의 놀라움에 운거 아니라며 잡아뗀다. 그러더니 책장을 앞으로 몇 장 넘기기 시작한다.

“엄마. 이 책 좀 감동적이다. 난 안울었지만 엄마는 아마 울 걸? 여기부터 읽어봐.”라며 책을 전하고 방으로 향한다.

책을 읽고 눈물을 보인 아들의 모습에 감동해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아이가 펼쳐준 곳부터 읽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아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마음을 더듬어보다 나도 눈물이 터져버렸다. 책을 다 읽고 방으로 가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런 날도 온다. 아이가 영재반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원서로 해리포터를 읽은 것도 아니지만 오늘 느낀 이 감동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아이의 독서 교육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소위 말하는 ‘책육아’를 시작한 이유는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해서였다. 책을 읽어서 사고력이 길러지면 당연히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한다는 말을 신봉했다. 좋은 대학을 넘어 좋은 직업까지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실어 나르며 ‘이 도서관에서 보유한 어린이 책을 유치원 졸업 전에 다 읽게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누가 나한테 3년 안에 도서관 책장 하나 다 읽으라 한다면 그건 고문일 것이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기록하기 위해 바코드리더기를 구매해 책상가득 책을 쌓아두고 삑삑 소리를 내며 기록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아이는 책을 안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책을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저 나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 돌이켜 생각하면 엄마의 열정으로 만든 책 무더기는 아이가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아이는 책을 의무로 읽는다. 심심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도 선뜻 책을 집어들 생각이 없다. 그저 하루에 한 번, 엄마와의 독서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가 선호하는 책이 생겼다. 신기하게 ‘학습’이 한 스푼이라도 들어간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가끔 선심 쓰듯이 십분 더 읽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여전히 아이에게 독서를 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린 시절 흔한 ‘소년소녀 세계명작’ 한 권 접해보지 못한 독서 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다. 책을 읽으며 내면의 변화를 겪은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가 자기 길을 찾고 공부를 ‘잘’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를 ‘평생 독자’로 이끌어 주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도 평생 책을 읽을 생각이니 어쩌면 아들이 나의 ‘평생 독서 동료’가 될 지도 모른다. 마음속 이런 욕심을 꾹꾹 눌러 두고 오늘도 아이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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