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간다. 예약했던 책을 찾아오고 서가를 둘러보며 보고 싶은 책을 한두 권 고른다. 커피를 주문해 구매한 책을 읽으며 마시다 온다.
지난 주 목요일 8번째 서점 방문을 했다. 지난번까지는 인사와 주문 할 때를 제외하곤 주인과 대화를 해 본 일이 없었다. 단골 가게인데, 이제 가벼운 대화 정도는 해도 괜찮을 텐데 항상 소심하게 앉아 책만 보다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내가 지난 방문 때 서점 주인에게 드디어 먼저 말을 걸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평소처럼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나누고, 예약한 책을 계산하며 음료를 주문하고 책방을 둘러보다 음료가 나와 자리를 잡고 책을 읽었다. 집에 가기 전 서가를 둘러보다 딱히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 ‘읽어야 할 책’들에 치이고 나의 취향을 반영하는 비슷한 책을 또 사고 싶지 않았다. 바로 이 타이밍인가? 용기를 내어 서점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책 추천해주실 수 있으세요?”
주인은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로 다가왔다. ‘누가 읽을 책인지’ 먼저 물었다. 서점 주인들에게 책 추천하는 매뉴얼에 나오는 단골 멘트일까 싶기도 했다. 내가 읽을 책이라 밝히고, 매번 비슷한 책만 고르게 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장님이 재미있게 읽으신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잠깐의 망설임 후 서점 주인은 추리 소설 좋아하냐며 나에게 <화차>를 권했다. 추리 소설은 나의 선택지에 늘 빠지긴 했지만 공교롭게 <화차>는 몇 년 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누구나 흥미롭게 이야기에 빠지는 책을 권하려면 추리 소설도 훌륭한 선택인 것 같았다. 주인이 다음으로 권한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었다. 판매용 도서 옆에 서점 주인이 직접 읽은 책을 전시용으로 배치해 두었는데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색인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와. 엄청 재밌게 읽으셨나 봐요?”
서점 주인이 무척 사랑하는 책 같았다.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하기로 했다. 두 번째로 추천해준 도서는 몇 년 전 국내에서 동일한 제목의 드라마 원작 소설인 <연애시대> 였다. 자신도 이제 읽어 보려 한다며 권했다.
“연애 소설이라...... 제가 절대 읽지 않을 종류의 책이네요.”
<연애시대>가 꽂혀 있는 서가 주변에는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 모여 있었다. 평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곳이다. 드라마도 안 봤고 일단 책이 두꺼워 보여서 조금 망설이는 나에게 이번엔 자신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권한다. 최근에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추천 받은 적이 있어서 책을 꺼내 쓰다듬어보았다. 주인의 몇 마디 설명에 마음이 동해 구매를 결정했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여전히 가슴이 뛰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도 회원들에게 책 추천을 받으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요즘엔 읽어야 할 책, 빌려놓은 책이 쌓여가서 추천 받은 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게 안타깝다.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읽은 책을 권하는 마음은 언제나 고맙고 환영이다. 같은 이야기, 구절을 읽으면서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숙제처럼 읽고 읽는 책의 목록을 줄여 추천 도서를 위한 여유를 다시 찾아야겠다.
남들이 추천해준 책은 기억하고 읽어보려 노력하면서 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을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일이 없다. 내 취향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경로로 읽을 책이 많은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조심하고 소심한 게 정말 나답다. 앞으론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은 꼭 읽어보라고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재미없으면 몇 페이지 읽다 덮으면 그만이지. 내가 추천한 책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면 뭐 더 바랄 게 없고 말이다.
이렇게 나는 서점 주인과 처음 대화를 했다. 다음에도 주인에게 추천을 부탁할 거다. 그리고 궁금했던 것,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어떻게 정리하는지,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는지, 다음엔 그걸 물어봐야겠다.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단골 서점 주인이 있다니. 나만의 소중한 것이 생긴 기분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매우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