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시술을 하러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과를 찾기로 결심한 것은 작년 초가을 남편 회사 직원들과 함께 대규모로 캠핑 시범단이 되어 1박 2일을 하고 나서였다. 부부 동반이었고 남편 직장 동료들의 아내들 사이에서 문득, 내가 나의 외모를 너무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가 좋지 않은 편이다. 거울 속 나는 관리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세월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피부에 뭔가 할 때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피부과를 찾았다. 내가 찾은 피부과는 치료 보다는 미용으로서의 시술을 많이 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전문의를 만나기 전에 상담 실장님을 마주했다. 피부과에서 일하는 직원이라 그런지 과연 피부가 백옥 같다. 그녀와 책상 하나를 두고 앉은 나는 급격이 위축된다. 마치 교무실에 호출당한 과거 어느 날이 떠오른다. 마침내 피부 상태를 확인해보겠다며 마스크를 벗어 달라는 말에 잔뜩 움츠린 채 마스크를 벗는다. 뭔가 잘못을 추궁 받는 것 같은 이 심정은 뭘까? ‘네. 저는 저를 너무 방치해왔습니다. 반성합니다. 앞으로 노력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고개를 들었다. 실장님은 예상과 달리 무심했다. 그저 “음, 문제는 다크서클 보다 어두운 피부 톤인 것 같은데요.”로 시작해 이것저것 필요한 시술들을 권한다. 피부과 시술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기에 실장님의 말을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상보다 큰 금액을 결제하기로 했다. 이제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날 차례다.
“무엇이 고민이어서 찾아오셨나요?”
점집이나 철학관에서 들어봄직한 말로 진료를 시작한 의사 앞에 앉았다. 내 앞에 아주 커다란 확대 거울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의사는 내 얼굴의 곳곳을 손으로 짚으며 설명해주고 나의 시선은 거울 속에 비친 얼굴위로 지나가는 의사의 손가락을 열심히 따라간다. 진료를 마치고 다음 방문 예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두 달 정도 열심히 병원에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예약 당일에 일이 생겨 급하게 예약을 취소한 게 화근이었다. 다음 방문 예약을 하는 데 ‘이 날은 오전에 예약이 벌써 마감이고, 그 날은 가족 행사가 있는 날이고’ 날짜 조율을 몇 번 실패한 후 “그럼, 제가 확인하고 다시 전화 드릴게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정말이다. 이미 선 결제를 한 상태였고, 돈이 아까워서라도 꼭 가야지 생각만 하며 일 년을 보냈다. 지난 달 다시 피부과에 전화를 걸어 방문 날짜를 잡았다. 오랜만이라 다시 실장님 방에 불려갔다. 여전히 실장님의 피부는 빛나고 있었다.
어제 찾은 피부과에서 ‘연어의 PN을 직접 피부 진피층에 주사하여 피부 재생 능력을 촉진 시켜주어 콜라겐 재생 및 피부 조직의 탄력성 증가, 수분흡수 등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시술을 받았다. 얼굴에 마취크림을 치덕치덕 바르고 잠시 후 의사가 치료실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어 의사를 볼 수 없다. 의사는 나의 한 쪽 귀를 손잡이 삼아 손으로 지탱하고 반대쪽부터 무언가 피부에 주입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따끔함과 함께 ‘푸쉭 푸쉭’ 하는 소리가 났다. 가끔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초코파이 만드는 공정이나 도넛에 잼을 주입하는 기계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 피부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지극히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간호사를 비롯한 피부관리사들이 무전기로 소통을 한다. 가능한 처치는 모두 끝내놓고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 의사를 호출한다. 의사는 나타나 자신의 등장을 알려주는 아주 짧은 인사를 전하고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 사이에도 간호사는 무전으로 시술의 경과를 알린다. “시술 50% 지났습니다.” “이제 제모 시술 이동하십니다.”
어제 ‘경찰관속으로’를 읽었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책이다. 군데군데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었다. 알 길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용 시술을 하는 피부과 전문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 관리 비법은 원한다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보다는 매일 시술을 하며 찾아오는 희노애락의 순간들, 일의 보람 혹은 회의적인 순간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런 책이 있다면 얼른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
아니, 내 옆에서 시종일관 머리띠를 고정해주고 마취크림을 발라주고 그 위에 랩을 씌워주고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고 조금 아플 것이라고 경고해주고 얼굴 부기가 크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던 직원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진료를 마치고 다른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피부 진정 관리’를 해주는 피부관리사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부드러운 손길로 세안을 해주고 팩을 씌워주고 차가운 막대기 같은 걸로 빠짐없이 얼굴 전체를 마사지 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마주쳤으면 좋겠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내 삶이 조금은 더 풍성해질 것 같다는 개인적 욕심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