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이었다

by 김모씨

하교하고 곧장 학원에 가는 아들 마중을 나갔다. 책가방과 학원 가방을 교환하고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맞다! 엄마 이거 먹어.”


아이가 주머니에서 꺼내 준 것은 귤이었다. 급식에 나온 것일 테다. 아이는 급식에 함께 나오는 건강 음료, 요구르트, 과일 등을 챙겨다 주곤 한다. 입맛에 맞지 않아 먹지 않은 걸 엄마 준다고 가져온다. 내가 음료수를 자주 마시는 걸 알고 있는데다, 몇 번 좋아하는 반응을 보인 것이 매번 음식을 챙겨오는 이유인 것 같다.


어쩌면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남편도 밖에서 남는 것이 있으면 집에 곧잘 챙겨온다. 회사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치룬 후 자기 몫으로 받은, 혹은 남은 초코파이나 과일을 가져오면 나는 고마워하면서 아주 맛있게 먹곤 한다.


몇 년 전인가 달콤한 버터 맛이 나는 감자칩이 전국적으로 유행이었다. 구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서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그 과자를 먹은 인증사진으로 넘쳐났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해서 그 감자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감자칩은 새 것이 아니었다. 원래 양의 약 삼분의 일 정도 남아 있었고 개봉된 입구는 스카치테이프로 다시 봉해둔 채였다. 직원 중 한 사람이 그 과자를 어렵게 구해 사무실 직원들과 나눠먹는 도중 남편이 자기 몫을 남겨 집에 챙겨온 것이었다. 나를 주겠다고.

아이는 이렇게 엄마아빠가 밖에서 남은 음식을 챙겨오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나도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주로 밖에서 음식을 챙겨오는 것은 엄마였다. 요즘도 엄마는 평일 근무하는 어린이집과 주말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농산물 시장에서 돌아오면 가방 한가득 먹을거리를 챙겨오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활동적인 엄마는 학교일에 적극적인 학부모였다. 초등학교 운동회나 바자회가 있는 날이면 엄마는 그날 팔았던 떡볶이나 김밥, 기념으로 나눠주던 백설기 여러 덩이를 가방 안에 챙겨왔다. 맛있는 음식을 보며 환호하고 꿀떡꿀떡 받아먹던 시절도 있었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선 조금이라도 많은 음식을 챙기려고 억척을 부렸을 엄마의 모습부터 떠올렸다. 풍족하지 못해서 여전히 ‘공짜 음식’에 집착하는 것 같아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사랑이었음을.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옛날식 경양식 식당을 탐방하며 쓴 글을 엮은 피아노 조율사의 책을 읽다가도 부모님을 떠올린다. 지인이 선물해준 아보카도 몇 개를 따로 챙겨 우리 집에 들른 아빠에게 건넨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챙겨다 주는 것은 구질구질한 행위가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챙겨온 요구르트를 마시고 빈 병을 치우다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챙겨다주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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