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친정 식구 9명이 총 동원되었다. 숙소 입실은 1시 이후일 텐데 친정 엄마는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오래 놀아야 한다고 아침부터 성화다. 엄마는 목소리도 크고 참 씩씩하다. 하지만 하루 이상 한 공간에서 지내기 힘든 사람이다. 어떻게 삼십 년을 함께 살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글쓰기 수업 중에 ‘엄마’가 주제로 주어진 적이 있다. 엄마라. 다른 수강생들은 주로 엄마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에 대해서 적었다. 그리고 본인의 글을 읽으며 훌쩍였다. 엄마라...... 무엇을 써야할지 아득해졌다. 한참동안 첫 문장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엄마’라는 주제에 적당해 보이는 이야기를 써나갔다. 나의 엄마가 아닌 보편적인 엄마에 어울릴 법한 이야기들.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 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비로소 우리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어.’ 같은 것들. 사실, 엄마를 이해 못하겠다. 이번 기회에 엄마에 대해 쓰면서 이해해봐야겠다.
이번 여행지는 갯벌로 유명한 바닷가 근처였다. 밤에 얕은 바다에서 어패류를 잡는 해루질이 여행의 주요 일정이었다. 모든 식구가 머리에 랜턴을 달고 밤바다에서 골뱅이, 게, 굴 따위를 한가득 따서 숙소에 도착했다. 엄마는 큰 솥에다 우리가 따온 어패류를 넣고 삶기 시작했다. 늦은 밤 술자리가 시작되었고 엄마는 식탁에 앉아 삶아진 굴을 까기 시작했다. 잘 익은 굴을 오빠 그릇에 한 번, 남편의 숟가락 위에 한 번 번갈아 가며 올려주기 시작했다. 이미 배가 불러 손사래 치는 두 남자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와 남편의 그릇에 삶은 굴을 올려주는 일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한참 자리를 잡고 마지막 남은 굴을 까서 남편의 그릇에 넣어주고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는 한 개도 못 먹었는데 말이다.
엄마의 아들 사랑은 유난하다. 엄마가 오빠에게 짜증을 내는 걸 본 일이 없다. 엄마는 요즘도 마흔을 바라보는 딸에게 이년 저년 하는데 말이다. 내 기억에 엄마는 아빠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지 않았다. 아빠는 일어나서 혼자 아침을 챙겨먹고 출근을 했다. 오빠가 3교대로 근무하던 때 엄마는 매번 오빠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 밥을 새로 해서 밥상을 차려주었다. 먹을 걸로 맺힌 건 오래가나보다. 나는 엄마의 굴 까는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며 예전 기억을 곱씹고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결혼해 첫 손주를 보고 이듬해 연년생으로 손녀를 본 엄마는 나에게 그랬듯이 손주와 손녀의 차별이 심했다. 손주만 데리고 나가 쇼핑을 하고 집에서 재우는 일이 많았고 손녀에게 ‘너무 일찍 본 둘째, 오빠를 힘들게 하는 지지배’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것도 딸인 내 앞에서. 엄마의 대를 이은 아들 사랑을 보는 나의 기분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엄마다.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던 외할머니는 딸만 여섯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과 손주 사랑이 대단한 엄마.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거기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해 몇 자 적으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 뭘 하냐고, 자기 좀 봐달라고 말을 거는 아들에게 싫은 내색을 하고야 말았다. 지금 나는 하나뿐인 아들과 애‘증’의 모자관계를 맺고 있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