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다. 아이를 낳고는 둘 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남편을 원망했고 남편에게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집안은 평화를 찾았다. 평화를 찾고 나서는 각자 자기 것을 추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퇴근 한 남편은 방에서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다 잤다.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방에서 글을 쓰다 아이 방에서 잠을 잤다. 우리에겐 공통된 취향이 없었다. 남편은 해외 스포츠나 캠핑 관련 영상을 주로 봤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배경 음악 삼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어쩌다 함께 무언가 보다가도 시간이 아까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함께 해보는 경험은 갈수록 줄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남편에게 너무 따분했고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는 나에겐 너무 시끄러웠다.
이런 생활에 딱히 문제의식을 느낀 건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게 맞는 건가?’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각자 좋아하는 걸 하고 필요 시 협업하여 아이를 키우고 집안 대소사를 함께하는 것. 이게 부부의 전부인가? 남편과 연애 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질색을 하는 음식이나 영화를 함께 경험해준 남편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서로를 위해 취향을 양보하는 일이 없어진 우리 부부. 더 나이가 들고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어떤 모습일까. 자녀를 키우는 공동의 목표가 끝나면 부부는 한 공간에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인기드라마를 섭렵하는 지인을 만났다. 남편도 화제가 되는 드라마를 챙겨 본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모든 매체에서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최근에 화제가 되는 드라마를 함께 보자고 제안했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안방에서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에 더 읽고 쓸 수 있었지만 남편과 무언가 함께 하는 노력을 해보고 싶었다.
한편의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내일 밤 다음편을 보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드라마 보기를 이어가다 맞은 주말 아침이었다. 남편과 침대에 누워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계속했다.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중엔 드라마와는 전혀 관계없는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분간 남편과 ‘드라마 클럽’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음에 함께 보고 싶은 드라마를 발견했다며 카톡으로 정보를 보낸 남편에게 답장을 보낸다.
“얼른 <지옥> 끝내고 이거 보자. 회사에서 먼저보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