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작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제에 맞게 글을 한 편씩 써와 수업 시간에 글을 읽고 합평을 했다. 모든 수강생이 각자 약 8편의 글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종강 날 완성된 책을 보고는 실망하고 말았다. 약 80페이지의 책은 책이라 하기에 너무 얇았다. 결국 남편과 아이 앞에 꺼내 놓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장에 꽂힌 책들을 꺼내 페이지 수를 확인해보니, ‘책’이라고 부르려면 200페이지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부터 200페이지 모으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썼고 예전에 쓴 글을 손보기 시작했다. 한 달이 걸려 총 207페이지의 원고를 완성하고 다시 주문서를 작성했다. 택배가 도착하고 아이와 남편에게 자랑하듯 ‘내 책’을 집안 곳곳에 전시해두었다. 가족의 반응이 고무적이었다. 아들은 용돈으로 구입 의사를 밝히고는 호기롭게 책을 펼쳐 들었다. (실제로 읽지는 않았다) 남편은 절대로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은 지인들에게 책을 강매하고 회사에서 틈틈이 내 책을 읽었다. 내 글에 감동이 있다며 글 잘 쓴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주 오랜만에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차마 내가 쓴 책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 봐봐. 할아버지. 000 지음.” 아들이 거든다. 이럴 땐 키운 보람이 있다.
딸의 이름을 확인한 아빠는 곧바로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아, 좀! 집에 가서 읽으면 안되나?’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엄마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영원 같았던 독서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은 책을 한 권 들고 집을 떠났다.
그 주 주말. 엄마가 커피값이라며 돈을 입금했다. 수고했다는 엄마만의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책에 궁한 티를 너무 낸 건 아닌가 싶었다. 고맙다는 생각보다 부모님에게 책을 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컸다. 부모님 싸운 이야기, 어두운 어린 시절에 대한 쓴 걸 보며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엄마에게 오랜만에 용돈을 받고 며칠 후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무뚝뚝한 아빠가 대뜸 오만원 짜리 세 장을 주며 책을 주문해달라 하신다. 주변 도서관과 동사무소에 기증하시겠다는 아빠를 말리고 싶지만 묵묵히 돈을 받아들었다. 네 책을 읽어봤는데 감동이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빠를 보며 책을 주기를, 아니 글쓰기를 시작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바로 그날 밤, 늦게 귀가한 남편이 예전에 쓰던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었다.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눈치가 왜 그렇게 없냐? 열어봐.”라며 핀잔을 준다. 혹시? 설마? 그 안에는 새로 산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언젠가 밖에서 작업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농담삼아 한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글 열심히 써봐.” 말하는 남편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웠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오늘 낮에 아빠가 한 책 주문과 갑작스러운 남편의 선물에 감동한 채 남편 앞에서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결제만 하면 초등학생이라도 책은 만들 수 있는데, 대단한 걸 해낸 것도 아니건만 응원하고 마음을 써주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