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테뉴 수상록
주 3회 고전을 읽고 있다. 숙제하듯 노트와 샤프, 파란 볼펜을 옆에 두고 내 딴에는 열심이다. 요즘 읽는 책은 몽테뉴 수상록이다. 다양한 주제에 관한 그만의 견해를 적은 책이다. 쉽지 않겠지만 시도해보고 싶은 글쓰기 방식이다. 무언가에 대해 자기 생각과 주관이 있다는 것부터가 나에겐 어려운 과제다.
오늘 읽어야 할 장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 드 귀르송 백작 부인 디아느 드 포아에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몽테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으로 나는 인간 학문의 가장 크고 중대한 난점은 다른 무엇보다 어린아이 키우기와 그 교육을 다루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몽테뉴 수상록 1권 159쪽 동서문화사>
아무렴 그렇지. 육아와 교육이 쉽다고 하는 부모 거의 못 봤다.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서 용기내어 방송에 출연하고 책을 읽고 강의를 찾아 듣는다. 교육 소신은커녕 남들이 좋다는 학습법에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나 역시 아이가 부모 잘못 만나 자신의 잠재력을 피워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몽테뉴는 교육에 있어 사부(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순히 지식 전달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제자가 배운 것들을 변형시켜서 자기 것, 자기 판단을 만드는 일은 좋은 스승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초등학교에서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복불복인데 어디서 이런 훌륭한 선생님을 모셔오나. 결국 또 내가 엄마이자 좋은 스승의 역할도 해야 하나 마음이 복잡해졌다.
좋은 교육에 대한 지당한 말씀을 읽다가 지쳐갈 때쯤 몽테뉴가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을 언급한 부분에서 다시 집중력이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듯하다. 외국어 교육을 위해 몽테뉴가 ‘아직 혀도 풀리지 않고 유모의 손에 있었을 때’부터 라틴어가 가능한 독일인에게 자녀를 맡긴다. 그렇게 집안을 ‘라틴화’한 결과 몽테뉴와 그의 부모는 물론 하인들까지 라틴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아침에 갑작스럽게 깨어나는 일이 아이들의 ‘뇌수를 혼란케 했다'는 말을 듣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악기를 연주시켜 자녀의 잠을 깨우기도 한다. 이렇게 세심한 부모의 배려를 받은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휼륭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에서 실천하던 교육 방법을 써볼 수 없던 중학교에서 몽테뉴는 어린 시절 익힌 라틴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는 ‘실은 거기서 얻은 소득이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학교생활을 회상한다.
그럼 무엇이 몽테뉴를 몽테뉴로 만들었을까? 나는 그 대답을 몽테뉴의 독서력에서 찾았다. 그는 열여덟 살쯤 책을 읽는 취미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아홉 살 아들을 보며 책 읽는 재미 붙이는 시기를 놓친 건 아닐까 불안했던 나에게도 희망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비교인 걸 알지만 “하물며 몽테뉴도 열여덟 살에 책 읽기에 빠졌다는데!” 하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린다. 몽테뉴가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시기에 마치 운명처럼 특별한 이해심을 가진 가정 교사가 그의 인생에 등장한다.
그는 교묘하게도 내가 공부는 않고 딴짓만 부리는 이 수작과 저 수작을 못 본 체하고 넘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거쳐서 나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를 읽었고, 다음엔 테렌티우스, 그 다음엔 플라우투스 ... 모두 이야기의 재미에 유혹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내 선생이 미친 수작으로 이런 짓을 못하게 막았던들, 귀족들이 모두 그렇듯 나도 학교에서 책에 대한 염증밖에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교묘하게 유도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체하면서도, 그는 그런 책들을 몰래 탐독하도록 의욕을 돋구어 주고 규정된 공부도 힘들지 않게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몽테뉴 수상록 1권 191쪽 동서문화사>
나도 아이가 책에 빠지게 하려고 꾸준히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고 숙제를 덜어준다. 그 단순한 일도 쉽지 않다. 기껏 구해다 준 책을 읽으며 몸을 베베 꼬는 아이를 보는 게 괴롭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수학과 영어도 해야 한다. 아홉 살 아이에게도 이러니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책과 멀어질 일이 안 봐도 훤하다. 독서를 통해 자기 생각을 키우는 동시에 입시도 성공하길 바라지만 이러다간 둘 다 놓칠 것 같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 아이가 사회에서 성공하되 노예가 되는 건 싫어요. 모든 책을 육아서로 읽는 나, 도대체 언제쯤 나만의 철학을 가지게 될까.
내일은 아이가 기다리던 책이 택배로 온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아이의 딴짓을 못 본 체하고, 숙제를 줄여 아이가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유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