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육아와 살림으로 남편의 임금 노동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전업주부로서 역할이 있긴 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없다. 안(못) 벌면서 쓰기만 하는 마음은 늘 불편하다. 가족을 위한 의식주와 문화 생활비를 제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약간의 돈이 남는다. 그걸로 알뜰하게 나의 세계를 꾸려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식비와 생활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회사 공금을 야금야금 쓰기 시작한 회계 담당 직원처럼 금액은 조금씩 커지고 죄의식은 줄어갔다.
나를 위해 한 푼도 안 쓰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법은 두 가지. 스스로 돈을 벌거나 용돈을 책정해 합법적으로(?) 돈을 쓰는 방법이 있다. 뻔뻔스럽게 두 번째 선택 사항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로 했다. 내 용돈으로 얼마가 적당할까?
밥을 먹거나 아플 때 치료받는 등의 필수적인 비용은 가족 구성원으로써 당연한 권리이므로 용돈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다. 생계가 아닌 최소한의 행복을 위한 비용, 이른바 최저 행복 비용을 계산하기로 한다.
1. 도서 구입비 : 10만원
현재 몸담고 있는 독서 모임이 2개, 내년 1월부터 철학책 읽기 모임을 시작할 예정이며 구상 중인 모임이 두 개 더 있다. 물론, 각 모임 선정 도서를 모두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책’은 반드시 구매 해야 한다. 읽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신간은 어쩐단 말인가? 어느 세월에 도서관 희망 도서 신청을 하고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 도서관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따라서 부족하나마(너무 부족하다!) 소정의 도서 구입비를 책정해본다.
2. 미용실 비용 : 약 7만원
나는 머리 스타일에 기분이 크게 좌우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최근에 미용실을 바꾸고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해보았다. 매우 마음에 들어 그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일 년에 두 번 퍼머를 하고 격월로 뿌리염색과 커트를 하는 비용을 계산해 나눠보니 매달 약 7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잦은 퍼머와 염색으로 머리카락과 집안 재정 모두 상황이 좋지 못하다. 과감하게 숏컷을 하고 고급 가발을 구매해 쓰고 다닐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가발을 벗고 집안에서 가족을 대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강경화 전 장관처럼 백발을 고수하거나 자연인처럼(떠오르는 특정 인물이 없다)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도 도무지 자신 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항상 신경 쓰는 나, 깔끔한 커트와 염색, 웨이브를 유지하고 싶다.
3. 옷 구매 비용 : 약 5만원
명품도 없고 명품으로 차려입고 외출할 일은 더욱 없는 나, 계절마다 약 15만원 정도 의류 구입비가 필요하다. 운동화나 겨울 외투 같은 고가의 의류는 생활비로 충당하기로 하고 스타일 변화가 없는, 가족조차도 새로 산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티셔츠와 바지를 사는 비용을 계산해보았다.
4. 피부 관리 비용 : 약 8만원
한 달에 한두 번 피부과에 드러누워 있고 싶다는 천인공노할 욕망 충족 비용이다. 계산해보니 꽤 큰 금액이다. 이 돈을 쓴다고 피부가 좋아진다는 확신이 없지만,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낯빛과 커져가는 모공, 없애고 없애도 변함없이 피부에 자리 잡는 비립종을 방치하다가 어떤 미래를 맞을까 두렵다. 어쩌면 두려움을 잊는 비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기타 부대 비용 : 5만원
음료비, 문구비, 문화 생활비를 아무 자료나 근거 없이 추산해본 비용이다.
총합 : 월 35만원
생각보다 적다. 아니, 적지 않다. 직장인이던 20대를 떠올려보면 각종 보험과 결혼자금 용도의 저축(비혼이란 선택지를 몰랐다)을 제외한 크지 않은 용돈에는 교통비, 식비, 핸드폰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있었다.
주유비를 포함한 교통비, 가끔 혼자 즐기는 음식 배달료, 통신비와 각종 수업료를 모두 ‘생활비’로 간단히 퉁쳐버리다니 염치없다. 무슨 일을 해야 내 용돈을 벌 수 있을까, 과연 그 일을 하며 지금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보다 다음 주 월급날을 나의 첫 용돈 받는 날로 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