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책이 곧 스트레스 되었다. 남들이 읽은 책은 당연히 읽어야 하고, 읽지 않은 책까지 모두 읽으려고 책을 쌓아두며 욕심을 부렸다. 직업이나 재산, 아이의 성적 등 뭐하나 내세울 건 없으니 몇 명 되지도 않는 지인들에게 그저 다독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책을 하나하나 완독하며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성취감이 찾아왔고 거기에 중독되었다. 신문을 봐도 영화를 봐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자꾸만 읽을 것들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독서를 즐기지 못하고 의무이자 나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렇게 일상을 조금씩 망치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책을 너무 많이 사서 가계부에 구멍이 나고 책을 읽느라 집안일을 미루고 나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가족도 살림도 모두 나의 독서를 방해하는 적들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읽고 뭐가 남았을까. 무질서하게 쌓여만 가는 책들, 책 표지가 내용물의 99%인 인스타그램 포스팅 몇 개.
한 달 전 읽은 책을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책장을 빨리 넘기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그저 ‘완독’이란 딱지가 붙은 책들.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에 집착하며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몸무게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굶기 일쑤였다. 폭식하고 나서 먹은 걸 게워내며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돌아보면 중요하지도 않은 숫자에 자신을 옭아매던 어리석은 시간이었다. 몸무게에서 이제 겨우 자유로워진 나, 이제는 책인가?
하루에 한 권씩 읽고, 화제가 되는 책들을 모두 섭렵하며 ‘나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전시하는 행위에서 몸무게로 나를 증명해 보이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바보짓은 그만하자. 나는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읽은 책의 숫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될 리도 없다. 재미있는 걸, 읽고 싶은 걸 읽자. 즐겁게 읽고, 읽다가 멈춰서 생각하고 지루한 책은 도중에 읽기를 그만하자. 읽고 느낀 것, 남은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나를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갖자.(그렇다고 서평으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지는 말고) 즐겁지 않은 독서, 강제적인 독서는 이제 그만하자. 책 말고도 할 일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