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얼마나 머물다 가실 건가요?
‘또’라는 말에서 느끼셨나요? 맞아요, 전 당신이 반갑지 않습니다.
다녀간 지 얼마 안 되어 아닐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제발 당신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신이 맞았네요.
평소와 같이 밥하고, 밥 먹고, 다 먹은 걸 치우는데
느닷없이 이 모든 행위의 의미를 묻기 시작할 때 알아차렸습니다.
아이에게 ‘엄마 표정이 왜 그래?’라는 말을 듣고 확신했네요.
다시 당신이 등장한 것을요.
사람들을 만나서 실컷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온 오후.
모른 척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합니다.
애써 담담하게 인사를 건네봅니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군요.
왜이리 일찍 오셨을까 최근의 일을 돌이켜봅니다.
맞아요. 나는 지금 취약합니다.
또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누운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게 두려워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전화로 짧은 안부를 전하는 것이 제가 한 전부입니다.
행여 자신의 딸이 걱정할까 시종일관 ‘괜찮다’ 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면 어쩐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자식의 역할도 부모의 역할도 모두 자신 없기만 합니다.
나를 들여다보게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당신은 늘 환영받지 못하고 쫓기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등장은 이번에도 비슷했지만 배웅만은 제대로 해주고 싶네요.
엄마에게 안부를 대신 묻는 것은 그만하고 내일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떼어 낸 조직이 아버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당신, 아직도 거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