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에도 계획 짜기를 즐긴다. 연말이면 말할 것도 없다. 일단 내년도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새해 계획을 빼곡하게 적는다. 내 계획, 아이 계획. 독서 계획, 재정 계획. 운동 계획까지 막힘이 없다. 그리고 대체로 지키는 편이다.(지킬 만 한 계획만 세운다)
올해도 새 다이어리는 진작에 준비되었건만 계획 세우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무얼 적을지 눈앞에 훤히 보인다. 독서, 공부, 아들 독서, 아들 공부, 3킬로만 빼자, 건강 관리 등등. 내년에도 사는 모습은 올해랑 비슷할 것이다. 굳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아침부터 밤까지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갔다. 그러다, 오늘 불현듯 떠오른 단 하나의 새해 목표. 그것은 바로, 매일 아침에 샤워를 하는 것이다.
나의 게으름은 상상을 초월한다. 약속이 없는 날은 아침에 씻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게 꾀죄죄한 모습으로 종일 집안에서 보낸다. 우유나 달걀 등 꼭 필요한 물건이 떨어지면 나가기가 귀찮아서 슈퍼 배달을 이용한다. 배달 최저 금액을 맞추기 위해 필요 없는 것까지 함께 구입해서 말이다. 그것뿐이랴,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 가방이나 물을 가져다 달라는 연락이 와도 절대 나가지 않는다. “엄마, 안 씻어서 못 나가니까 알아서 해라.”라고 아들의 부탁을 야멸차게 거절하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모니터 앞의 내 모습도 나태함, 그 자체이다. 남편의 수면 바지와 자세히 보면 보풀이 징그럽게 돋아 있는 목 늘어난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티도 남편의 것이다) 자주색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다. 문밖으로는 고개도 내밀기 싫어서 오늘 신문도 가져오지 않은 상태요, 오늘 꼭 버려야 할 재활용품이 넘쳐나 다용도실 출입이 불가능하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소파로 이동해서 자주색 담요로 몸을 휘감은 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새해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샤워를 할 거다. 아, 일단 이 글을 쓰고 나서 샤워할 것이다. 담요에 나를 휘감고 드러눕는 유혹을 이겨내고 화장실로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