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음악에 귀를 기울일 때도 있다. 아이는 요즘 태블릿 PC에서 그림을 검색해 따라 그리는 일에 열중해 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잠시, 아이는 끊임없이 말을 건다. 책을 읽다가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흐름이 끊기는 일이 이어지다 보면 짜증이 솟구친다. 건성으로 대꾸하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나온다. 아이는 나의 짜증을 알아채고 기분이 상한다. 아이는 나의 독서를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아이는 매일 영화 한 편을 본다. 영어 소리 듣기 훈련이자 시간을 떼우는 방편이다. 아이가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끄적인다. 가끔 잘 때도 있다. 영어 영상물을 보기 시작했을 땐 꼭 함께 앉아서 보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방치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간식을 먹이고 시계를 보며 학원 갈 시간을 기다렸다.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은 오롯이 자유를 즐길 수 있으니까. 아이가 돌아오면 의무처럼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독서 시간을 지켰다. 모든 일과를 마치면 어서 잠자리에 들라고 아이를 재촉했다. 아이가 눈을 붙이면 비로소 나도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는 데. 아이와 매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이는 늘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는 엄마의 시선을 의식하고 불편해하는데 말이다.
아이에게 간식과 끼니를 챙겨주며 깨끗한 옷과 잠자리를 준비해주고, 숙제를 신경 써주고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었다. 무언가를 만들어오거나 그린 걸 보여주면 칭찬을 몇 마디 해주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아이가 원하는 걸 선물해주었다. 손톱, 발톱을 다듬어주고 두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그 외 등등.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 크고 작은 일을 수행해나갔다. 일과표 속의 과제들을 처리해나가듯이 감정 없이, 효율적으로.
그렇게 아이와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며 갑갑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열 살이 돼서야 이런 일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며칠 전 독서 시간을 빼고는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책을 읽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이가 보는 영화를 다시 같이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림 그리고 노는 걸 지켜 보고 아이와 진심으로 대화하기로, 몸과 함께 영혼도 아이와 한 공간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건담을 좋아한다고 거의 주말마다 새로운 프라모델을 아이에게 안기고 남편은 미뤄둔 잠을 청했다. 나는 책 읽을 시간이 확보됐다며 책을 들고 다른 방으로 피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아이는 몇 시간이고 혼자 건담을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그리고 ‘각자’ 주말을 보냈다.
내일부터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하루에 몇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시작된다. 이번 방학만큼은 아이를 훼방꾼이란 존재로 만들지 않기로 다짐한다. 못 읽고 못 쓰더라도, 가끔은 버겁더라도 아이와 ‘진정으로’ 같이 있어 주기. 겨울 방학의 첫 번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