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일차적 목표는 ‘대입 준비’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 졸업 이후 사회에서 쉽게 말해 밥벌이를 하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오늘도 학교에 가고 사교육을 받으며 주요 과목인 국영수를 보충한다. 물론,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협동심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 등을 배워가지만 학교의 주요 목적은 대입 또는 보육인 것은 변함이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조금 다른 길이 있을까 대안 교육에 눈을 돌려보지만 그 길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대안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다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주변 지인들에게 ‘대안 교육’이란 말을 꺼내면 돌아오는 말은 ‘결국엔 공교육으로 다시 돌아오더라.’ 또는 ‘좁은 인간관계에서 아이들이 힘겨워한다고들 하더라.’와 같은 것들. 긍정적인 반응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영수에 매진해도 모자랄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안 초등학교를 알아보며 입학 서류 중의 하나인 부모 소개서의 항목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겪은 실패담이나 육아 철학을 묻는 항목들을 보며 나의 육아를 돌아보게 되었다. 육아 10년 차. 도대체 내가 가진 육아나 교육에 대한 철학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한걸까?
그러던 중, ‘농촌 유학’에 참여 중인 아이들을 다룬 기사를 읽게 되었다. 아이와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보내는 일 년의 시간이라. 누군가에게는 ‘시간 낭비’ 또는 ‘한 때의 일탈’에 그칠지 모르지만 그걸 해보고 싶어졌다. 이른바 실험적인 삶을 살아보기.
소수의 친구들과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 사교육 없이 맘껏 뛰놀아 보기. 아파트의 편안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아빠와 한 달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는 것도 모두 그전에는 못해본 일들이다.
돌아온 후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들이 말하는 대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걸 하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불편한 생활에 지치다 못해 영원히 농촌 생활을 경멸할 수도 있다.
지난 주말 신청한 학교와 머물게 될 숙소를 보고 왔다. 예상과 달리 관계자로부터 ‘농촌유학’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설명과 사례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도 삶이 있겠지. 삶이 있는 곳에는 원치않은 소란과 마음부침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도 나와 아이는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삶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