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여러 가지 면에서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멀쩡한 외모를 갖추고 배울 만큼 배운(부모님 기준) 딸이 전업주부로 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기대와 실망감 혹은 안타까움과 함께 뒤섞여 가끔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지금이라도 집에 얽매여 있는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며 반찬이나 먹거리를 날라다 주는가 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불치병이나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불행을 겪은 여성들을 빗대어 무사안일한 나의 삶이 최고라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배은망덕하게도) 그런 내리사랑은 때로는 날 더 지치게 한다. 만들어 온 반찬을 넣어주려 냉장고를 연 엄마는 서랍 속 상태가 좋지 않은 채소부터 시작해 각종 반찬 통 비우기를 포함한 청소를 시작한다. 혹은 쌀이 떨어져 밥이라도 굶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김치냉장고 서랍의 비어있는 모든 공간을 쌀이 담긴 플라스틱 통으로 채워놓는다.

아버지는 다용도실에 모아놓은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차에 싣고 본인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포장을 한 후, 지난주에 비운 전기 청소기의 필터를 다시 정리 하신다.

부모님이 엉망이 된 집안 곳곳을 바로잡는 동안 나는 소파에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전업으로 하는 일이 살림인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물론 부모님은 딸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선 행동이겠지만 가끔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그냥 살아보고 싶다.


냉장고에 신선 식품 서랍에 형태가 변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타나 고무장갑을 끼고 맹렬하게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서랍으로 시작해 유통기한이 지난 각종 소스류를 비우고 김치통을 정리하고 냉동실에 화석과 같이 굳어버린 음식들을 제거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냉장고를 닦았다.

몇 시간 청소를 마치고 몸은 힘들었지만 뿌듯한 마음에 몇 번이고 냉장고 문을 열어 청소의 결과물을 확인했다.

매일 청결함을 유지하는 건 능력 밖의 일이지만 참을 수 없는 더러움에 집안을 뒤엎는 청소를 하고 난 뒤 찾아드는 개운함과 성취감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알아서 할 텐데,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아이는 내가 챙기기 전에 숙제를 스스로 한 적이 없다. 숙제 걱정은 안중에 없이 종일 노는 일에만 바쁜 아이를 보며 참지 못하고 또다시 화를 내고 말았다.

숙제를 마치고 아이가 일어난 자리에 지우개 가루와 학용품이 늘어져 있다. 냉장고 속 썩고 있는 음식물에는 그렇지 않은데, 책상 위 지우개 가루가 눈에 몹시 거슬려 잔소리를 퍼부으며 결국은 내 손으로 치우고 만다.

아이 손으로 싼 여행 가방이 영 미덥지 않아 기어코 내용물을 모두 끄집어내어 내 방식으로 개어 넣는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내가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내리사랑’을 나 또한 반복하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부모님이 그저 내가 하는 데로 내버려 두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건 나를 좀 믿어달라는 호소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영 미덥지 못한 딸이라는 직감은 스스로를 괴롭혀온 오래된 마음속 응어리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나도 그런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에 시작한 글이다. 쓰다 보니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내리사랑’을 이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 익숙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어렵기만 한 부모 노릇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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