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읽는 여자들’ 첫 모임이 있는 날, 모임을 해체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한 달 전,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호기롭게 철학책을 읽는 것도 모자라 글쓰기까지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을 며칠 앞두고야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실감이 났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능력을 넘어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늘 그래왔듯이, 도망치기로 했다.
모임과 함께 개설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한 편씩 올리기로 했다. 글이 올라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분이 글을 작성해오셨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하며, 급하게 예전에 작성한 글 중 하나를 골라 포스팅했다.
걸어서 도달 가능한 현대인의 월든 숲,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월든 숲치고는 지나치게 분주한 분위기였다. 자리를 잡고 모임을 시작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들을까 목소리를 낮춰 돌아가며 써온 글을 읽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낭독을 듣다가 어느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모임을 제안한 것에서 해체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나만 생각했다. 의견을 모으고 약속을 지켜준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부끄러웠다.
도심 속 스타벅스 한구석에서 철학을 논하는 일.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모임에 나와준 이들에겐 가능한 일이었다. 이분들 덕에 나는 그 시간 스타벅스에서 철학을 했다. 그것을 철학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내 안에 무언가를 건드렸던 문장들을 나누면서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모호한 것들이 명확해졌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잘 해낼 수 있다고, 더 잘 살아낼 수 있다는 힘이 생겼다. 다음 책을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몽상가의 산책>으로 정하고 모임을 마쳤다.
마음을 모아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보다 배나 힘든 일은 그걸 지속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제부터는 모니터 앞에서 철학을 해야 한다. 혼자라면 절대 해내지 못 할 일, 이분들과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철학하는 나의 동료 여인들을 믿고 더 이상은 도망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