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성공한 삶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완전하게 이해하거나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는 삶을 성공이라 대답했다. 말하면서도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타인은 제쳐두고서라도 자신을 이해하는 건 어떨까? 나는 얼마만큼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루소는 명예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잃고 난 후, 자신을 탐구 주제로 삼으며 노년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행복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치열한 연구로 여러 서적을 쓰며 성공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자신의 행적과 저서에 대한 오해로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받고 외톨이가 되어 20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 자신을 철저하게 탐구해온 그는 ‘자기 이해’를 넘어 ‘자기 확신’에 이르러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말한다.
그러한 깨달음이 쉽게 온 것은 아니다. 누군가 결백을 믿어주리라는 바람으로 자신을 항변하는 저서 <고백록>을 쓰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후세대에라도 희망을 걸고 또다른 책을 쓰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개인은 변해도 집단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는 모든 희망을 거두고 그저 운명에 순응하기로 한다. 그 후 자신에게 몰두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삶의 순간들을 고찰한다.
50년 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한 거짓말에 괴로워하는 노년의 루소, 타인의 얼굴에 나타난 만족감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루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에 상처를 받는 루소. 어쩐지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노년의 산책자를 보며 씁쓸함과 함께 위안을 얻기도 했다. 네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보낸 그의 행적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그가 평화를 찾아 다행이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아 마무리하지 못한 열번째 산책에 대한 단상에서 그는 열일곱 살에 만난 여인과의 행복한 시절을 추억한다. 노년에 나는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그렇게도 간절했던 성공과 고통을 잊으려 시도했던 쾌락의 순간들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어린 시절 투정부터 사춘기의 반항을 거쳐, 마흔의 나이에 해석도 안 되는 책을 부여잡고 있는 이유. 모든 것이 다 좀처럼 얻기 힘든 ‘자기 이해’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게 나를 이해해달라 요구하는 대신, 누군가를 이해하겠다고 섣부르게 나서는 건 그만두자. 이제부터라도 성찰을 통해 자기 이해로 가는 여정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