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하고도 여드레가 지났다. 1월은 한 해의 시작,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설레임이 있다. 하지만 2월은? 무얼 시작하기도 마무리하기도 애매한 달이다. 이러다가는 남은 2월을 몽땅 허무하게 보내게 될까 두렵다.
오늘 내가 한 일. 일단 유튜브에서 쓰레기 같은 영상을 보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아침을 차리고 먹기, 정리의 일과를 마쳤다. 아이와 함께하는 독서 시간, 몇 줄 읽다 눈이 감긴다. 읽긴 읽었는데 뭘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닥에 누워 거북이 식사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일다운 일을 하나 하긴 했다. 미루고 미루던 냉동실 정리를 마쳤다. 냉동실에 있는 것을 모조리 꺼내고 그중 많은 것을 버렸다. 우리 집에 이토록 많은 육류와 생선류를 보관하고 있을 줄이야.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을 연예인 신변잡기의 끝판왕, <동치미>를 봤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읽던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2월하고도 8일인데 이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원인은 꼽자면 월초에 몸에 맞지도 않은 과음을 해서 술병이 난 것, 월말에 이사를 가기로 해서 마음이 붕 뜬 것.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페초린’이라는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만난 것.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페초린은 자신의 심리를 끝까지 파헤치는 인물이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혀내고야 만다. 그리고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인물이다. 연인과 함께하는 페초린이라든가, 다정한 아버지 페초린은 상상할 수 없다. 그 인물의 운명이 내 것과 닮았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며칠을 힘겹게 보냈다. 페초린은 자신의 운명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행복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설프게라도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결정적으로 아이도 낳아버렸다. 나의 불행은 곧 아이의 불행이라는 절망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가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을 창조해놓고 어떤 해결책도, 희망도 남겨놓지 않았다. 나는 그 책을 손에 잡고 문제적 인물 ‘페초린’에게 끌려 내려놓지 못했다. 중간에라도 읽기를 멈췄다면 좋았을지 모른다.
페초린은 잊자. 나는 이제부터 희망의 증거를 찾아볼 거다. 2월이 여드레나 지났지만 남은 날이 더 많다.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