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일들

by 김모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마음에 훅 들어온 구절 하나. “운명이 허락한다면.” 운명이 허락한다면 농촌에서 마흔 살의 봄을 맞는 거지. 운명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겠지. 세상에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운명이 이끌었다고는 할 수밖에 없는 일들, 오늘은 그것에 대해 써보려 한다.

아주 작은 일부터. 아침에 신문을 읽다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었다. 글쓴이는 <민들레>라는 교육 잡지의 발행인이었다. 대안 학교 정보를 검색하다가 마주친 적이 있는 이름이다. 대뜸 검색창에 잡지 이름을 넣고 연간 구독을 신청해본다. 격월로 집에 배달되는 잡지를 보면서 어떤 글들을 만나고, 거기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기대가 된다.


연휴 마지막 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 티브이를 켜니 다큐멘터리가 방영 중이다. 부제는 ‘농부와 소설가’. 농촌 생활과 독서가 주요 관심사인 요즘, 한 시간 동안 그야말로 몰두하며 시청했다.

다큐멘터리는 소설가 김탁환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소멸 예정지역인 전남 곡성에서 보낸 일 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가 곡성에 가게 된 계기는 과학자에서 농부로 변신해 생태 농업을 실천 중인 농사 스승, 이동현의 존재가 있어서다.

몇 주 전, 농촌 유학을 신청한 학교에 사전답사를 하고 왔다. 내가 신청한 학교는 화순에 있는 분교였다. 학교 이곳 저것을 돌아보다 급식실에서 선생님이 말하길, 분교에서는 급식 조리가 어려워 본교에서 매일 급식을 날라와 아이들이 먹고 있단다. 열다섯 명 남짓의 아이들을 위해 들이는 노력을 생각하니 ‘효율성’에서는 빵점이다. 그야말로 폐교 위기의 학교를 지키려는 선생님과 지자체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멸되어 가는 것은 곡성이 아니라 서울에서의 삶이었다고 소설가는 말한다. 생활의 편의와 더 나은 삶을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남은 곳, 지역 앞에 ‘소멸 예정 도시’라는 말이 무겁게 남는다.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존재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두 운명이 허락해서 가능한 것들. 그 시간에 TV를 켤게 뭐람.

느닷없이 농촌 유학을 신청한 것도 신문 기사를 읽고 나서다. 우연하게도, 추가 접수 기간이었고 검색 끝에 가고 싶은 학교에 자리가 있었다.


우연이라고는 할 수밖에 없는 만남과 발견은 그 외에도 무척 많다. 잘 들여다보면 정말 인생은 흥미진진한 것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내 일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버릇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내일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을까? 한 달 뒤엔? 모든 게 내 예상 범위 안에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원작 읽고 영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