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우다
난 인사를 잘 안 했었다. 아니 못했었다.
사람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나의 그런 무심함을 받은 상대가 나중에 왜 그냥 갔냐고 물어보면 난 못 봤다고 변명했다. 그렇게 거짓말하며 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난 상처받기 싫었다. 속으론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들기를 원했지만 그보다 상처받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그 첫 번째가 사람 피하기였다.
피하기의 제일 쉬운 방법은 사람과 안 마주치는 거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무시하고 갔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 상대가 내 맘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무서웠다.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건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과 지내며 아이들을 위해서 바꾼 습관 중 하나가 인사하는 거였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처럼 사람을 무서워하고 상처받기 두려운 사람으로 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악물고 인사해야 했다. 처음엔 등 뒤쪽이 서늘해지고 진땀이 났다. 눈도 못 마주쳤던 내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게, 그 별거 아닌 순간이 난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나를 바꿔야만 했다. 아이가 아직은 이런 나를 눈치 못 챌 때 (아니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바꿔야 했다. 그런데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고 있는 내게, 세상은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머, 귀여워라 몇 개월이에요?’
‘아이구 ~넌 참 행복하겠구나’
‘오~넌 아빠를 안 봐도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다 허허~ ’
‘이마 좀 보게~ 장군감이네 ‘
내게 먼저 다가온 사람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향수 냄새 풍기는 20대 여자,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걷다가 잠시 발길을 멈춘 50대 아주머니,
아파트 벤치에 앉아 눈의 초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던 70대 할아버지까지..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해줬다. 그 덕분에 나도 조금씩 세상과 눈 맞춤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느꼈던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문이 인사가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와,
늘 보던 사람과의 인사 중에
어떤 게 쉬울까?
아이들은 거실에 배를 깔고 책을 보고 있는 사이에, 난 음식 쓰레기를 두 손에 꽉 쥐고 '쓰레기 버리고 올게~'라며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삼색 슬리퍼를 신었다. 책을 보고 있던 아들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 맞춤을 한다.
"응 엄마~잘 다녀와!"
그 껍질 없는 알맹이 인사를 받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아, 따뜻하다. 그 따뜻함이 달아날까 싶어 잠시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는 의문이 생겼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와 늘 봤던 사람과의 인사 중에 어느 쪽이 더 쉬울까? 아마 전자가 더 쉽지 않을까?
처음 만났으니 인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습관이다. 인사를 잘해야 착한 어린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인사를 안 하면 심지어 엄마에게 머리를 콕 쥐어 박히는 일을 당했던 터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박여있다. 그리고 처음 본 사람에게 첫마디는 진심이든, 아니든 인사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다. 이렇듯, 전자는 쉽다. 반면 후자는 어렵다. 아니 익숙하지 않다.
특히나 가족끼리는 더더욱 그렇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매번 반갑지도 않고, 인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별일 없고, 늘 인사를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한다. 아니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이야기이고 아이들은 다르다. 나와 11년이나 같이 살았지만 여전히 내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잠자리에 들어간 이불속에서도, 나에게 온몸으로 웃으며 따스한 인사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하얗게 드러낸다.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