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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Dec 17. 2018

제3의 계급, 며느리

*지극히 개인적인 시가의 상황입니다. 시가가 100개라면 100개의 상황이 있습니다.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아휴~ 얘 눈 좀 봐. 초롱초롱하니 상덕이 어렸을 때 닮았네. 이마도 잘생겼고. 어머 귀도 복스럽네. 꼭 지 아빠 닮았다 얘!  

어이구~ 애엄마 안 닮았아서 다행이다'


준수가 4개월 됐을 때쯤, 시아버지 생신으로 시가 친척들 35명이 모였다.

시고모님이 준수를 보며 했던 말이다. 준수의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데, 시고모님은 준수 엄마인 나를 안 닮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공기가 얼어붙음을 느낀 건 '나'뿐이었다. 시어머니도, 시누들도 시작은어머니들도, 남편조차 그저 웃고만 있었고 그 누구도 내 기분이 어떨 거라는 걸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시고모님의 말에 관심이 없는 건지, 시고모의 말을 듣고 상처 받을지도 모를 애엄마에게 관심 없는 건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난 '내 앞에서 나를 까는 말'에 그저 얼어붙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받은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이때만 해도 사람을 잘 몰랐다. 지금은 아냐고? 모른다. 안다기보다, 시가 사람들이 내뱉는 차갑고 깨진 유리 같은 에 '왜 저렇게 말할수밖에 없는지 궁금했고, 그게 알고 싶어 심리에 대한 책들을 읽고 빼기명상도 하다 보니, 대략 아~ 그렇겠구나! 를 느낀 정도다.

 

성장문답 강의(장강명 작가님 편) 캡쳐화면


시대가 바뀌고 요즘 시부모님들은 며느리를 하인처럼 부려먹지 않고,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없앤다는 말들은 나에겐 하얀 구름 같은 말이다. 보이지만 내 것이 아닌.


세 개의 계급

각자 시가의 상황은 다르다. 내가 속한 시가에선 3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최상위 계층은 남자, 그 중간계급은 여자. 최하위는 며느리다. 밥상에서 앉는 위치가 그 계급을 명백하게 말해준다.

며느리가 함부로 남자들이 먹는 밥상에 앉아있다가는 투명인간 취급받는다. 시아버지는 곧 자리 정렬을 하신다. '다른 남자'에게 방금 며느리가 앉은자리를 가리키며 너 저기 앉아라! 명령한다. 며느리의 자리는 밥상 4개 중 삐그덕거리는 쇳소리가 나는 밥상 모서리쯤이다. 부엌문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어깨를 움츠려야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다. 자리이동 중인 나를 구해 줄 유일한 남편은 최상위 계층의 밥상에서 양반다리를 넓게 하고 앉아 맛있게 밥을 먹는다. 그런 남편을 보며 설국열차의 맨 마지막 칸을 타면 어떤 기분일지 느낄 수 있었다.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시가에서 내 이름은 어이, 저게, 애미다.

'어이~ 물 가져와!' 직장에서도 듣지 못했던 시작은아버님의 말.

'저게 물도 안주도 지 밥만 처먹고 앉아있다' 고 소리 지르는 시아버지.

'애엄마 안 닮고 상덕이 닮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시고모님.


그들의 시킴에, 무례함에,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탈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너덜너덜해졌지만 숨은 붙어서 아직 살아보겠다고 헐떡이는 며느리의 마지막 숨통을 시아버지는 꼭 끊어내고야 만다. '저게 또 간다고. 왜 벌써 가냐고'. 인상 쓰며 신경질을 냈다. 며칠씩 휴가 내고 와서 일주일은 있어야지 왜 꼭 하루 이틀만 자고 가냐고 화를 내셨다. 옆에 서 있던 시어머니의 쿡 찌르는 손가락을 보긴 했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분께 내 마지막 자존심을 드리고 다시 차에 타곤 했다. 팔짱을 껴드리며, '조만간 또 올게요' 했다. 미쳤지. 지금 같으면 안 했을 행동을 그땐 그렇게 해서라도 서로 웃으며 사는 게 가능하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그들의 차가운 말에 상처 받으면 나만 손해다. 이걸 그때 알았더라면...  



14년 전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영화 <인터스텔라>의 쿠퍼처럼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14년 전 나에게 신호를 보낼 수만 있다면..

1. 시가사람들이 계속 하찮게 대하더라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그건 며느리인 '너'에게 하는 말이 아니까. 그들은 자신의 열등함을 감추고 좀 더 우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건데, 그 방법으로 비교우위를 선택한 거다. 그게 쉽거든.

누군가를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지정하고 최소한 '그 사람보다 내(우리 가족)가 더 낫지'라는 마음을 갖고 싶어 아둥거릴 뿐이야. 성이 다른 사람, 즉 '며느리'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할 뿐이지.


네가 시가에 법적으로 속하기 전에 그 가족 중에선 비교열위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어. 지금은 그 자리를 며느리가 하고 있는 거고, 며느리가 없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또다시 우게 될 거야.


그러니 그들의 밥상 자리 정하기, 설거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 가져오라는 명령, 가슴이 작아서 젖은 제대로 나오겠냐는 비아냥을 굳이 가슴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


그건 네가 못나서, 혹은 무시받을 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무시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어. 시가 사람들을 차라리 불쌍한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면 돼. 그게 정 안 될 땐 말을 해. 표현을!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혹은 코미디언 '김 숙'씨처럼 '어, 상처 주네!'라고 콕 짚어 얘길 하던가.


2.말해도 안 바뀌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그럴 땐 자리를 피해.


왜냐고? 너한테 누가 똥을 던지면 그걸 맞고 있을 거야? 아니지. 그러니까 피해. 어차피 시댁에서 며느리는 최하위 계층이야. 너 혼자 그 계급을 바꿀수는 없어.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면 돼.


어떻게 행동하고 말   명확해지면 그대로 해봐. 차피 목숨은 한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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