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화의 주제로 삼아 '나 힘든 것 좀 알아달라' 며 하소연하지도 않는다. 단무지빠진 감밥처럼 덤덤한 관계다. 보기엔 김밥이지만 단무지가 없어 먹기엔 아쉽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며 안 먹기에도 뭣한. 배가 고파야 먹게 되는 그런 김밥같은 사이.
그저 그렇게 아는 언니의 아버지가 돌아셨다고 한다.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건너건너 알게 됐다. 이런 인간관계의 특징은 슬픈 소식을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는다. 건너건너 알게 된다. 아예 모르면 몰랐을까 아는데 그냥 넘어가기도 애매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한테 말을 안한 게 서운하지 않았다. 정말 적당한 사이가 맞았다. 나또한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정신 없었을지 보다는 '얼마 부조하지? 계좌번호를 직접 묻기는 좀 그런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물었지만 계좌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만 하다 5일이 지났다.
그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 나 이런 일이 있어서 좀 바빴어.그동안 별일 없었지?'
못 가봐서 미안하다. 늦게 알았다. 고생하셨다. 그런 적당한 답톡을 했다.
그리고 이모티콘은 성의껏 찾아 보냈다.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되게 귀여운 얼굴로 고개를 까닥까닥하며 하트를 날리는 이모티콘이다.
언니가 고맙댄다. 그저 카톡인데.
언니의 인사는 내가 고민했던 부조금의 액수와 아직도 주지 못해 빚진 것 같은 마음은, 이제 안가져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언니와의 대화가 끝나고 카톡창을 잠시 봤다. 내가 보낸 이모티콘을 5초 정도 바라보며 그 이모티콘에게 나도 모르게 '고맙네~' 라고 읊조렸다. 나는 실제로 감정 표현이 살갑거나 애교있는 편이 아닌데 그 이모티콘은 아주 살갑고 다정하며 따뜻했다.
이 이모티콘이 나의 마음을 한 50배쯤 부풀려서 마음을 대신 전해준 것 같았다.
언니와 나는 서로 부풀려진 이모티콘을 믿고 살아가는 관계다.
매장 내 직원이 '어서 오세요' 라며 웃어주는 건 내가 반가워서 인사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굳이 그게 진심이냐고 캐묻지 않지만 적당히 그것을 믿어버리는 것처럼. 나의 이모티콘과 언니의 고맙다는 인사는 그것과 비슷했다.
가끔은 언니와 나같은 관계 또한 살아가는데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매번 부대끼고 진심인 관계는 질척하고 피곤하니까. 그저 언니도 나도 아직 살아있다는걸 느낄 수 있는 관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