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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Dec 11. 2022

한약의 주절거림

유병욱 카피라이팅 캠프 2강 미션 3-사물의 관점에서 글쓰기

나는 누구지?

내 안에 17개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백출 진피 구기자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외 다른 건 흐릿하다


이틀 전만 해도 분명 난 세상에 없었다. 다행히 뿌옇지만 생각나는 게 있다. 이게 전생인가..


사람의 손에 들려 저울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17번. 17가지의 다른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후론 다른 곳에 담겼다.


물이 담긴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갔다. 점점 열이 났다. 너무 뜨거워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원래 있던 장소와 공기와 시간이 바뀐 듯했다. 비닐 파우치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하나인 것 같은데 50개로 분열돼 있다.

난 도대체 뭘까? 보이는 개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저것들 중에 진짜 나는 무얼까?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왜 와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또다시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정신은 명료했다. 열이 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적당한 온도로 데웠다. 내가 갇혀있던 비닐 입구를 힘을 주어 뜯었다.


곧 해방인가~ 싶었지만 이내 이 사람의 습하고 벌건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둡고 좁은 통로를 따라 뚝 떨어지듯이 내려갔다.

도착한 곳은 깜깜한 주머니 같은 곳.


살짝 높은 온도, 다른 음식의 흔적, 빛은 없었지만 왠지 내가 왜 이 세상에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평온했다.



분명 나는 하나가 아닌데 하나가 됐고

파우치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왔지만

내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것들과 섞여 있지만 여전히 '있다'

정신 또한 어느 때보다도 신선하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달라졌지만

여러 개의 내가 비로소 하나가 된 조화로운 느낌.


그리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안도감


이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설렘



이 세 가지 덕분에 고요하다.




저울 위에 있던 생김새, 항아리 속에 있던 모습, 파우치 속 형체, 나를 규정짓는 형태는 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기까지 변하고 또 바뀌었지만

난 여전히 '있다'


조만간 어디론가 흘러들어 갈 것 같다.

예감이지만 왠지 맞을 확률이 98%나 되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어디로 가든

내가 어떤 형태로 있든

난 여전히 존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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