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기형아 검사, 그리고 성별
산부인과 대기실은 고요했다. 아니, 정확히는 소음으로 가득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임산부들의 웃음소리, 약간의 설레이는 듯한 표정, 아이들의 재잘거림
그리고 간호사들의 호명, 모든 소리가 물속에 가라앉은 것 처럼 멀고 흐릿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남편이 옆에서 내 손을 잡았지만, 그의 온기조차 유달리 차갑게 느껴졌다.
목투명대 검사.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3밀리미터 이상이면 위험군이라고 했다.
염색체 이상, 심장 기형, 다운증후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의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기실에 앉아있는 지금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6년동안 먹었던 약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화학물질들은 내 혈관을 타고 흘렀고, 태반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단약을 했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몰랐다.
임신 초기, 가장 둥요한 시기에 독성은 아이의 몸을 만들고 있었을 것.
이름이 불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서는 것 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남편이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따. 의사가 웃으며 맞아주었지만,
그 미소가 진심인지 직업적인 것인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배를 드러냈다. 이미 불러온 배가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났다.
초음파 기계의 탐촉자가 배위를 미끄러졌다.
모니터를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릴 용기가 없었다.
의사의 표정을 살피며 그저 어떤 소식의 징조를 찾으려고 했다.
1.74밀리미터.
처음에는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가 설명했다.
목 투명대의 두께인데, 정상 범위 안에 들어가 매우 좋은 수치라고 했다.
하지만 노산이기 때문에 니프티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했다.
혈액 검사로 염색체 이상을 더 정확하게 확인하는 절차라고 한다.
일주일 에서 열흘 이내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일주일은 길었다. 목 투명대가 정상이라는 안도감과 니프티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했다.
10일이나 지났을까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결과지를 그대로 읽어 주었다.
21번 염색체, 18번 염색체, 13번 염색체, 성염색제 모두다 너무 정상이라고 한다.
완벽하게 이 아이는 건강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쌓아올렸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약을 먹었던 것이 두려웠고, 단약 과정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봐 무서웠고,
내 잘못으로 아이가 아프게 태어날까 봐 밤마다 울었다.
하지만 아이는 괜찮았다. 모든것이 정상이었다.
간호사는 살짝 웃으며 내게 물었다. 성별을 알고 싶냐고
나는 통화중이지만 고객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싶다고.
아들이에요.
시간이 멈췄다. 그 짧은 문장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남편은 딸이던 아들이던 너무나도 반가운 손님이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좋아하고 있었다.
지난 몇 달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임신을 알았던 순간의 놀라움, 약을 버렸던 밤의 결심, 단약의 지옥 같은 고통,
내 안의 괴물과의 싸움, 남편을 의심했던 어두운 날들, 그리고 천천히 찾아온 평온함.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여정이었다.
아들은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 내가 먹었던 약도, 단약의 고통도, 불안과 의심도,
그 모든 혼돈 속에서도 작은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1.74밀리미터의 목투명대, 정상 범위의 염색체, 건강한 몸. 그는 강했다. 나보다 훨씬 강했다.
그날 밤, 배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이제껏 두려워서 말을 걸지 못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잘못될까 봐, 너무 사랑하면 잃게 될까 봐.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이제는 믿을 수 있었다.
남편이 옆에서 배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과 내 손이 겹쳐졌다.
우리 사이에, 우리 아들이 있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삶의 중심이었다.
검사는 통과했다. 가장 큰 산을 넘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산이 있을 것이다. 출산의 고통, 육아의 혼돈,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을 잊고 기뻐할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은 건강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soon
[Next ep.9 새로운 시작을 꿈 꿔도, 그건 꿈일 뿐이야]